국사암은 쌍계사에 딸린 암자입니다. 신라 시절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국사가 머물렀다고 해서 국사암이라고 합니다.

국사암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2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쌍계사를 거쳐 소나무 가득한 흙길을 15분 정도 걸어가는 방법이 있고, 그냥 차를 타고 목압마을을 거쳐 국사암 주차장으로 바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길을 아는 사람들은 입장료가 없는 목압마을 길을 좋아합니다.

‘국사암에 가거든 산신각과 연꽃밭을 꼭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국사암 경내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산신각은 흔히 말하는 ‘기운’이 좋다는 곳입니다. 산신각 계단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호흡도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산신각은 아무 때나 가도 되지만 연꽃밭은 무더위가 제철인 요즘에 가야 합니다. 지금 연꽃이 좋습니다. 

연꽃이 하늘을 향했습니다. 요추에 힘을 빼고, 어깨와 목뼈를 한껏 땅바닥 가까이 낮추고 고개를 드니 비로소 연꽃이 하늘에 들어앉게 되었습니다. 호흡도 잠시 멈추었습니다. 힘들지만 나를 한껏 낮추어야 연꽃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연꽃이 하늘을 향해 합장하고 있는 듯합니다.

 

 

연꽃 안에 태양처럼 보이는 연밥이 있습니다. 연꽃의 중심을 태양의 부처인 대일여래의 자리라고 합니다. 연밥의 생김새를 보니 이해가 갑니다. 부처의 자비가 광명한 빛으로 온 세상에 비친다는 이야기가 연밥의 모양새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절집의 연화대, 불단, 문살, 탑이나 부도 등에 연꽃문양이 흔한 걸 보니 절집은 자비의 세계를 도배한 것입니다. 

 

 

연잎 사이를 비집고 진홍빛 연꽃이 피었습니다. 진흙 뻘밭에 뿌리를 묻고, 연잎의 노고를 얻어야 한 송이 연꽃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세상 모두는 서로의 관계를 맺는 인연으로 살아갑니다. 고마운 듯, 수줍은 듯, 연꽃이 세상에 분홍빛 불을 밝혔습니다. 

 

 

연꽃에서 눈을 돌려 연잎을 보았습니다. 연잎을 중심으로 바라보니 연꽃이 주변으로 밀려났습니다. 대상을 어디서, 어떻게 생각하고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은 중심일 수도, 주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타자가 그렇게 볼 뿐이지 연꽃이든, 연잎이든 각기 다 온전한 생명의 중심입니다.

 

 

국사암 연밭은 둘레가 보통 발걸음으로 200보, 면적은 대략 600평 정도의 작은 연못입니다. 그냥 걸으면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한 시간 이상 놀았습니다. 천천히, 이리저리, 이렇게 저렇게 집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연꽃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연못 위에는 해탈과 열반을 몸소 실현하는 다비장이 있습니다. 다비장과 연꽃밭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마 윤회의 고리를 끊고 서방정토에 태어난다는 ‘연화 화생’의 바람을 담은 듯합니다. 

어찌 살면, 또 어찌 죽으면 ‘연화 화생’의 끄트머리라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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