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강남지역 아파트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강남지역 아파트 모습. (사진=뉴시스)

[뉴시안 = 박용채 편집위원]   일본의 부동산거품이 절정으로 치닫던 1980년대 후반 일본 정부관계자들의 입에서 ‘뉴노멀’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금리에 자산가격은 오르지만 물가는 안정되고 있다는 자화자찬이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가 치솟게되자 일본 중앙은행은 저금리 정책으로 대응했다. 시중에 돈은 넘쳐나고 대출할 곳을 찾지못해 우왕좌왕하던 일본 은행들은 앞다퉈 주택론을 내놓았다. 도쿄 도심은 물론 지방의 집값이 폭등했다. 부동산개발업자. 금융기관, 개인 가리지 않고 부동산에 열을 올렸다. 사실상 1억 총투기꾼 시대였다. 하지만 91년 수요의 불균형이 표면화되면서 금리가 올라갔고 결국 부동산거래는 급감, 가격은 폭락했다. 일본 거품붕괴의 시작이었다.

 문재인 정부 4년, 부동산값은 천정부지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제껏 급등을 인정한 적이 없다. 대통령이 1월 신년사에서 ”주거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며 두루뭉술 넘어간 게 전부이다. 정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4년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은 17%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장통계는 전혀 다르다. 경실련이 서울 30평대 아파트 11만채를 분석한 결과 문재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79% 올랐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3483만원으로 2017년 6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인 6억1755만원을 넘어섰다.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 아파트를 살 돈으로 이제는 전세 살기도 힘들다는 얘기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최근 2개월새 5차례나 집값이 고평가됐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를 수는 없다“는 부동산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집값 폭등이 주택 수요, 공급 문제 때문이라고만 보기 어렵다“며 집값 상승기대 심리, 불법과 편법 거래, 시장 교란 행위 등을 가격 상승 원인으로 꼽았다. 주택 매수 자제를 읍소하고 투기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엄포를 놓는다고 집값이 안정될까. 예상대로 시장 반응은 냉소적이다. 불신을 넘어 아예 ‘너는, 떠드세요’라는 식의 무관심에 가깝다. 집 가진 사람은 세금 부담, 집 없는 사람은 치솟는 가격에 한숨만 짓고 있는게 현재의 부동산 시장 상황이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임대차 3법’은 계약청구권을 행사한 일부 세입자의 주거안정에 긍정적 효과가 있었지만 전세물건 감소, 전세값 폭등, 이중가격 현상 고착화 등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전통적 메달밭인 양궁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4개나 수확했다. 하지만 모두들 금을 예상했던 남자 개인전에서 김우진 선수는 8강 문턱을 넘지못했다. 그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활시위를 당겨 내가 쏜 화살이고,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잘 못 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쉽지만 그게 삶이다.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냐“고 말했다.

 선한 의도가 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정책 역시 늘 해피엔딩만 있는 게 아니다. 김영삼 정부때 시작한 금융실명제는 부정한 자금통로 차단과 세수확보 차원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채권 소지인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 및 세금부과 면제조항을 삽입함으로써 훗날 삼성, 신세계, 부영 등 재벌 오너들의 차명주식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대중 정부때의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역시 카드사태를 야기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의 '빚내 집사라' 정책 역시 경제에 생채기를 남겼다.

 사실 경제 문제의 원인을 특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몸에 열이 날 경우 그 열이 어떤 병 때문에 일어난 지를 특정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수없이 예측하고, 시물레이션을 해도 막상 적용하면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개입되면서 예상치 못한 데로 흘러간다. 시장에는 특정 계층만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환자가 피곤할 정도로 이것저것 검사하면서 끊임없이 원인을 찾아나가는 것은 정확한 처방을 위한 것이다. 경제 정책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원인 진단이 잘못될 경우 해법은 산으로 가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이 된다.

 홍남기 부총리의 부동산 담화를 보면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집권 민주당은 서울, 부산 보궐선거 패배 뒤 한때 부동산정책 기조의 재조정을 검토했으나 그럴 경우 문재인 정부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와 함께 내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자연스레 용두사미가 됐다.
 서울 아파트값이 지나치게 많이 올랐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집을 사려는 것은 정부 정책이 미덥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민 탓을 하기 전에 정책에 문제점이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무오류를 주장하는 정부’는 있을 수 있지만 ‘무오류의 정부’는 없다. 성찰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시장이 어디로 흘러갈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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