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여자 67KG급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이다빈(오른쪽)의 경기 모습. 태권도 종주국을 자부하는 한국은 올림픽 처음으로 ‘노골드’의 불명예를 안았다.(뉴시스 제공)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여자 67KG급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이다빈(오른쪽)의 경기 모습. 태권도 종주국을 자부하는 한국은 올림픽 처음으로 ‘노골드’의 불명예를 안았다. (사진=뉴시스) 

태권도, 유도, 레슬링, 복싱 등 한국 투기종목의 투혼은 어디로 갔나? 역대 하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의 보고(寶庫)’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온 이들 종목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약속이나 한 듯‘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넘게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한 복싱에 이어 유도와 레슬링은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서 2회 연속 애국가 연주에 실패했다. 특히 종주국으로 국기(國技)의 위용을 뽐냈던 태권도마저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리스트를 내지 못했다. 이들 종목은 집행부 구성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벌이거나 내분이 끊이지 않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이를 관리 감독해야 문화체육부나 대한체육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다. 이제라도 2024년 파리올림픽에 대비,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이들 종목 경기단체들에 대한 특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한국 투기종목의 추락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정한 선수선발, 과학적인 훈련,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는 합리적인 집행부 구성으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지키고있는 대한양궁협회의 협회 운영을 본받으라고 충고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단체 9연패 달성 등 4개의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은 5년 전 리우올림픽에서도 4개의 금메달을 독차지했었다. 

태권도,‘금’ 9개 딴 유도 종주국 일본 배워야

가장 충격적인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가 도쿄올림픽에서 대회 사상 처음 기록한 ‘노골드’. 한국태권도는 지난달 27일 딴 여자 67kg급 이다빈의 은메달, 남자 80kg이상급 인교돈의 동메달을 마지막으로 경기 일정을 마무리했다. 태권도는 24일 남자 58kg급 세계랭킹 1위 장준이 동메달에 그쳐 이번 올림픽에서 남녀 6명이 참가해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거두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태권도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80kg이상급에서 훗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국회의원까지 지낸 문대성이 우승한 것을 비롯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4개, 시드니올림픽에서 3개 등 그동안 5차례의 올림픽에서 모두 12개의 금메달(은 3. 동 6)을 땄었다. 한국 태권도의 부진에 대해 차동민 SBS 해설위원은 “세계 태권도 수준이 평준화됐기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또 코로나 19로 인해 진천선수촌 등에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태권도인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일 ‘한국, 태권도 ’노골드‘ 충격…세계화의 그늘?’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태권도는 유도 종주국 일본의 유도선수 육성방법을 배워야한다”고 꼬집었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 유도 남녀 각 7체급씩 14체급 가운데 남자 5체급, 여자 4체급 등 9체급을 석권하는 등 평소에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평균 50% 이상의 금메달을 가져갔다. 한국 태권도의 부진은 무엇보다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까지 협회 회장에 대한 불신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선수선발의 공정성과 훈련의 과학화 또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조정원(74)총재가 2004년부터 18년째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이끌면서 지구촌 189개국에 태권도을 보급하는 등 태권도의 세계화, 과학화에 앞장서고 있으나 정작 국내 태권도계는 파벌 싸움 등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유도 14명 나가 은1 동2…2012년엔 금2 동1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꾸준히 금메달을 따왔던 유도, 레슬링의 몰락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됐던 유도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하형주, 안병근의 우승을 시발로 금메달 사냥에 나서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모두 11개의 금메달(은 16, 동 16)을 딴 한국체육의 효자 종목. 하지만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여자 48kg급 정보경, 남자 66Kg급 안바울이 은메달, 남자 90kg급 곽동한이 동메달에 그치면서 ‘금맥’이 끊겼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남자 100kg급 조구함이 은메달, 남자 66kg급 안바울, 남자 73kg급 안창림이 동메달로, 은 1개, 동 2개로 대회를 마감했다. 특히 7체급이 나선 여자는 ‘노메달’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김재범, 송대남(이상 금메달) 조준호(동메달)가 남자 유도에서만 금 2, 동 1개를 수확했으나 2016 리우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거푸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유도도 대표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선발, 집행부 구성 등에 특정 학맥, 인맥이 작용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지적이다. 리우올림픽에서는 대표선수 경험도 없는 지도자가 10년 넘게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기용돼 선수들의 기량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딴 인구 193만 명의 유럽 소국 코소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이다.

레슬링은 경기력 향상보다 법정소송에 관심   

1945년 광복이후 우리나라에 최초의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장창선), 올림픽 금메달(양정모)을 안긴 레슬링은 사태가 더 심각하다.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2개를 딴 레슬링은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김현우) 1개에 그쳤으며, 남녀 18명이 나갈 수 있는 2020 도쿄올림픽에는 대륙 예선에서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kg급 김민석, 67kg급 류한수 2명만 가까스로 출전권을 땄으나 올림픽 본선에서 초반 탈락했다. 레슬링 역시 유도와 함께 2016년과 2020 올림픽에서 ‘노골드’의 수모를 당한 것이다. 레슬링도 지난해까지 협회 집행부 구성을 둘러싸고 내분이 잇달았으며 지난 1월 회장 선거에서는 중소기업인 해마로의 조해상대표가 3선 국회의원 출신 김재원 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꺾고 당선됐으나 현재 법정 소송이 진행중이어서 회장 취임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선수 선발, 과학적인 훈련, 올림픽 본선진출권 확보 등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도쿄올림픽에 1명의 선수도 내보내지 못한 남자 자유형과 여자팀의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대한체육회의 애매한 규정에 때문에 아직도 코치직을 사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력 회생 어려운 복싱도 회장선거 무효소송중

1984년 LA 올림픽 신준섭, 1988년 서울올림픽 김광선, 박시헌 모두 3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한국복싱은 이번 도쿄올림픽에 단 1명의 남자 선수도 내보내지 못했다. 8체급의 대륙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체급의 여자부에는 2명이 참가했으나 역시 초반 탈락했다. 복싱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이 기록한 2개의 동메달 가운데 한수안이 1개(1개는 역도 김성집)를 따는 등 2008년까지 금메달 3개, 은메달 7개, 동메달 8개를 거둬 들였으나 이후 메달 획득은 물론 본선 참가 관문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등록선수가 1400여 명에 불과한 복싱 또한 지난 1월 회장선거에서 당선된 윤정무 가림건설 대표가 회장선거 무효소송에 휘말리면서 집행부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회생 불능의 위기에 처한 한국 복싱의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태권도, 유도, 레슬링, 복싱 등 한국 투기종목의 부진과 관련, 체육계 원로들은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투기종목 보다는 부상 위험이 적은 구기나 기록경기에 참여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 문화체육부나 대한체육회가 투기종목 경기단체의 운영실태를 제대로 파악해 문제가 있는 단체는 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들 종목의 경기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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