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올림픽 참사의 범인 중 하나인 칼리드 자와드(Khalid Jawad)/(사진=USweekly뉴스캡처)

[뉴시안= 기영노 편집위원] 

대통령들은 힘이 세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켜 600 여 만명의 유태인과 그 열 배에 이르는 6000 여만 명 가량의 군인과 민간인을 사망케 했고, 존 F. 케네디(구소련의 후루시초프)는 쿠바 봉쇄로 3차 세계대전을 막아 수 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시대(the Apartheid era)를 ‘용서와 화해’로 풀어냈고, 군부독재의 상징 전두환은 86,88 때 스포츠 장려정책으로 체육인들로부터는 크게 미움을 받지 않고 있다.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뚱은 탁구를 매개로 냉전 관계의 미국과 중국(공)의 관계를 녹여내 인류 평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고, 조지 웨아는 축구에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스포츠인 최초로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영국수상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되었고, 일본의 아베 총리와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를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촌극을 벌였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인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사망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기도 했다.

스포츠는 그 나라 대통령들의 관심, 그리고 정책 변화에 따라 활성 화 되거나, 침체되곤 했었다.

지구촌의 현역, 역대 대통령(수상)들은 그동안 어떠한 스포츠 정책을 폈었고, 그래서 그 나라의 스포츠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았다.

1972년 뮌헨 올림픽과 검은 9월단

1972년 9월5일은 올림픽이 테러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은 날이다.

‘세계 평화’를 가장 큰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올림픽이 테러집단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중반을 넘긴 9월5일 새벽 팔레스타인 극좌단체인 ‘검은 9월단’ 소속, 테러리스트 8명이 이스라엘 숙소를 침입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이스라엘의 레슬링 선수 가드 쏘바리와 역도 선수 요세프 로마노 선수를 살해하고 나머지 9명의 선수를 인질로 잡았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200명과 독일, 일본의 적군파 요원들을 석방하고 안전한 탈출을 보장하라는 요구 조건을 내세웠다.

테러범들은 4시간 안에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30분에 1명씩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서독 정부는 이 요구조건을 놓고 이스라엘 정부와 협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는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를 단 한 가지도 들어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올림픽 역사가들은 만약 골다 메이어가 테러범들에게 굴복해서 요구조건을 들어 주었다면 올림픽은 그 이후 에도 테러범 또는 그와 유사한 범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검은 9월단’ 사건은 이스라엘 인질 9명 등 이스라엘 선수들 11명과 테러범 5명 그리고 독일 경찰 1명 등 17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결과를 남긴 채 막이 내렸다. 나머지 테러범 3명은 생포됐다.

 

골다 메이어, 테러범 들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보복하라!

골다 메이어는 즉각 보복에 나섰다.

뮌헨올림픽이 끝난 직후 ‘비밀요원’ 모사드를 만들어 ‘검은 9월단’에 관련된 사람들을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살해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시리아,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캠프를 폭격하고 특수부대를 동원해 테러에 관련된 ‘검은 9월단’ 관련자들은 끝까지 추적해 세계 곳곳에서 이들을 살해했다.

이스라엘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는 개인적으로는 역도 종목을 가장 좋아했다.

그녀가 역도를 좋아한 이유는 자신이 노력한 대로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도 선수는 자신이 노력한 대가가 자신이 드는 쇠 덩어리 무게에 그대로 드러나는 정직한 스포츠이고, 또 체급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공정하게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것도 감안을 했다.

그녀는 이스라엘 체육회장과 만나서 “딱 한 가지불만은 역도가 남자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빨리 여자에게도 개방을 해야 한다고”고 말하기도 했다.

여자 역도는 메이어 총리가 (여자에게도 개방을 해야 한다고)주장을 한지 20여년 만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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