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허무할 정도로 짧게 끝난 장마의 뒤 끝에 온 가마솥 무더위는 거칠었습니다. 지구 표면 온도가 142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합니다. 가뭄도 심해서 사람들뿐만 아니라 풀, 나무들도 버티기 힘든 여름 더위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아침저녁에 부는 바람결은 한풀 내려앉았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변합니다. 이제 입추를 지나, 모기 주둥이가 비뚤어진다는 처서로 갑니다. 아직 남은 더위의 끄트머리를 떨구려 섬진강으로 향했습니다. 강바람 맞으며 꽃구름 놀이를 실컷 즐겼습니다. 

섬진강은 지리산과 백운산을 가로질러 흐릅니다. 산이나 들판에서 보는 하늘과 강에서 보는 하늘은 사뭇 달리 보입니다. 강에서 보는 하늘이 훨씬 넓고 크게 느껴집니다. 남해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강을 거슬러 올라 섬진강 하늘을 덮었습니다. 바람에 밀려온 꽃구름 덕분에 한결 시원해진 느낌입니다. 

높고 푸른하늘에 기묘한 꽃구름의 아우성이 즐겁습니다. 둑 위에 걸터앉아 꽃구름을 보니 뭉치는 듯 흩어지고, 흩어지는 듯 뭉치는 구름의 움직임이 정해진 바 없어 보입니다. 어느 편에도 매이지 말라고 한 말씀 하는 듯합니다. 생각의 여지를 두고 이편, 저편을 두루 바라볼 수 있어야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이 그럴 때이기도 합니다. 여름과 가을 그 사이로 제트스키가 달립니다.

제트스키가 꽃구름의 아우성을 지나더니 이제는 아우성치는 사람을 싣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갑니다. 배롱나무 사이로 젊은 아우성이 요란합니다. 섬진강이 시끌시끌합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중늙은이는 부러운 눈길이 가득합니다. 눈치를 챈 강바람이 중늙은이도 그런 세월이 있었다고 위로하며 지나갑니다. 언제였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배롱나무는 초록빛 뒤덮인 한여름에 100일 동안을 붉은 꽃이 핀다고 합니다. 초록과 빨강, 그리고 파랑과 하양. 서로 다른 빛깔들이 기운을 주고받아 더 뚜렷하게 여름을 밝힙니다. 다양한 어울림이 아름답습니다. 이편저편 사이의 조화를 두루 봅니다. 강바람이 잦아져 배롱나무꽃이 떨어지면 이내 선선한 가을이 찾아옵니다. 배롱나무꽃이 지면 여름도 지고 그러면, 그러면 매미의 울음도 스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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