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연대 박사. (사진=뉴시스)<br>
황연대 박사. (사진=뉴시스)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한 공동 유치 실패, 국가올림픽위원회 연합회(ANOC) 총회 서울개최 무산, 일본의 2020 도쿄올림픽 성화봉송로 독도 표기에 이어 이번에는 30년간 이어온 패럴림픽 폐회식의 ‘황연대 성취상’ 폐지까지 한국 스포츠 외교는 언제까지 헛발질만 할 것인가.

 오는 24일부터 9월5일까지 13일간 열릴 ‘지구촌 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 2020 도쿄하계패럴림픽은 세계 181개국 4400명의 장애인이 22개 종목에서 힘과 기를 겨루며 우의를 다지는 페스티벌. 1960년 로마에서 시작해 올해 16회째를 맞는다. 

1988년 서울하계패럴림픽은 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올림픽이 비장애인 올림픽과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여기에 황연대 성취상이 처음 선보였으니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까지 30년간 남녀 각 14명씩 28명(21개국)이 황연대(83·사진) 박사가 내놓은 순금 75g짜리 메달을 받았다. 

상의 본래 명칭은 ‘황연대 극복상’이었지만 2008년 베이징하계패럴림픽부터 황연대 성취상으로 바뀌었다.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는 투쟁보다는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공하자는 긍정의 의지를 담았다. 그런데 30년 동안 동·하계 패럴림픽 폐회식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패럴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평가받은 최우수선수(MVP)에게 시상하던 ‘장애 선수들의 꿈과 희망’ 황연대 성취상이 석연찮은 이유로 폐지돼 논란이 일고 있다.

 “황 박사, 당신은 세계 장애인들의 대모” 

 이 상은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의사가 되어 한국장애인 재활운동에 헌신한 황연대 박사가 1988년 한 언론사로부터 ‘오늘의 여성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 200만 원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International Paralympics Committee)에 쾌척하면서 제정됐다. 2018년 3월 18일 평창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는 남자 알파인스키 우승자 아담 홀(당시 31세·뉴질랜드)과 여자 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 선수였던 시니 피(당시 26세·핀란드)가 이 상을 받았다. 홀은 선천적 척수장애인으로 남자 회전 입식에서 금메달을 땄다. 피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음에도 바이애슬론 12.5㎞ 좌식에서 완주했다. 이 자리에서 황연대 박사는 1996년 애틀랜타 하계패럴림픽에서 이 상을 수상했던 다비드 레가 전 스웨덴 예테보리시 부시장 등 역대 수상자 6명으로부터 감사패와 함께 75g짜리 순금 메달을 받았다. 장애인들에게 영감과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 황 박사에 대한 경외의 표시였다. 대표연설을 한 레가는 “황 박사님은 그동안 전 세계 장애인을 대표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스스로와의 싸움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박사님과 함께했다. 앞으로도 패럴림픽의 정신과 박사님이 만든 이 상의 취지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장애를 이겨내고 스웨덴의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로 14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레가는 부시장이 된 후 펴낸 자서전을 황 박사에게 보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IPC가 2억 원에 황연대 성취상 일본에 팔아먹은 꼴

 하지만 황 박사가 제정한 이 상이 2020 도쿄패럴림픽에선 사라진다. 상 이름을 바꿔서 ‘아임 파서블(I’m Possible·나는 가능하다) 어워드’로 시상한다. 2019년 IPC 집행위원회는 도쿄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한화 2억 원 안팎의 재정적인 후원을 전제로 제안한 이 상의 신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IPC가 반한감정을 바탕에 깐 일본의 금전 공세에 30년이나 시상해온 황연대 성취상을 일순간에 없애버린 것이다. 

브라질의 앤드류 파슨스가 위원장으로, 독일 본에 본부를 둔 IPC는 2019년 6월 집행위원회에서 2020년 도쿄 패럴림픽부터 "내부 반대 및 일부 국가의 부정적 의견 등을 종합해 황연대 성취상을 없애고 새로운 상으로 대체하겠다”는 의사를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전달했고 11월에는 황연대 성취상 운영 불가 방침을 최종 결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일본이 제공한 2억 원의 재정지원에 IPC가 넘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체부 대한장애인체육회,초기 대응 미숙이 원인

그런데도 2020년 말 4년 임기의 새로운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던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눈이 팔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역량이 부족하면 장애인체육을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차원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를 관리 감독해야 할 문체부 역시 IPC와 도쿄패럴림픽조직위 관계자를 대상으로 황연대 성취상의 보존 당위성을 강조하고 필요하다면 예산 지원 등 적극적인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방관만 했다는 지적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장애인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황연대 성취상은 IPC와 일본의 간교한 책략에 한국 문체부, 대한장애인협회의 무관심 무능까지 겹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렇지않아도 2018년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해온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유치는 지난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호주 브리즈번이 개최지로 지정되면서 물 건너갔다. 또 오는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기로 한 제25차 ANOC 총회 역시 그리스 아테네로 빼앗겼고, 2020 도쿄올림픽 성화봉송 코스에 독도가 일본 영토인 것처럼 표기해도 무방비 상태였던 한국의 스포츠 외교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에 황연대 성취상 마저 IPC와 일본의 계략에 말려 폐지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나 속수무책이다. ‘과연 한국에 스포츠외교가 있기는 한가’라는 자문자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