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사람의 그때' 사진전이 부산 해운대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9월 1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강 선생님은 나의,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우리나라 사진계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한' 선생님입니다. 1985년부터 선생님 곁을 맴도는 행복을 지금껏 누리고 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선생님 작가 노트 중에 "어쨌거나 만나게 되었던,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이 모든 분들과의 인연이 새삼스럽게 고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같은 마음입니다. 

9월 중순, 철 지난 해운대 백사장을 걸었습니다. 백사장에 새겨진 수없이 많은 발자국은 한여름을 달구었던 시간의 흔적입니다. 발자국 하나마다 깃든 사연은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인연을 품고 있습니다. 각자의 순간이 추억으로 쌓여 세상을 풍부하게 합니다. 나도 한 발자국을 보탰으니 순간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해운대 서쪽, 벡스코 근처에 고은사진미술관이 있습니다. 전시 준비를 도우러 전시회 며칠 전부터 강 선생님 주위에 있었습니다. 1976년 정릉에서 찍은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의 사진이 새겨진 현수막 포스터를 이제 막 벽에 붙였습니다. 기념사진을 찍는 선생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람의 그때를 하나 더 했습니다. 

 

사진은 일상적인 순간을 선택해서 특별한 순간으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 작가 노트 중에 "주인공의 뒤나 옆으로 조금 딸려 들어오는 환경은 그냥 배경이 아니라 그 공간을 지배하는 그 사람의 여러 가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래서 사진에 포함 시킬 때 세심하게 고려했다". 초상사진 찍을 때의 말씀이지만 다른 모든 사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주변 배경을 세심히 고려해서 일상적인 순간을 보았습니다. 

 

 

이번 전시는 "강운구의 타임 캡슐을 여는 것과 같다"고 스스로 말씀하실 정도로 오래 묵힌 사진들입니다. 150여 명의 문인과 화가들이 들어가 있는 163점의 사진들이 고은사진미술관을 꽉 채웠습니다. 50 년의 시간이 새겨진 발자국입니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전시장을 둘러보고, 둘러보는 마음이 사진마다 가득 합니다. (배경에 앉아 계신 분은 강 선생님의 절친이신 사진가 주명덕 선생님이십니다. 이 분들은 사진계의 용 두 마리, 아니 두 분입니다) 

요 며칠 선생님 곁에서 시간의 발자국을 더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많은 가지를 뻗고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 열매는 씨앗이 되어 다시 한 그루의 나무가 됩니다. 우리는 각자가 선생님의 선생님이 되고, 제자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밝히는 나무들입니다. 

지금 이 사진을 50년 뒤에 혹 누군가가 보았을 때, 그럴 가능성은 '1'도 없지만 그래도 본다면, 강운구의 '사람의 그때' 사진은 이 순간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지금 바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오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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