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도쿄올림픽 야구 4강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6회초 무사 1루에서 이정후가 안타를 날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8월 도쿄올림픽 야구 4강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6회초 무사 1루에서 이정후가 안타를 날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1982년 “어린이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온 국민에게 건강한 여가선용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했었던 프로야구(KBO)가 어느덧 40주기를 맞았다. 그동안 프로야구팀 수도 6팀에서 10팀으로 늘었고, 1998년 이후 외국 선수들도 합류해 프로야구의 ‘양과 질’이 매우 높아졌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땄지만, 방심했는지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미국, 일본은 물론 도미니카에도 패해 4위에 머무르기도 했다. 프로야구 40년 주년을 맞아 재미있고 의미 있는 40개의 스토리로 매주 수요일 찾아뵙고 있다.

이정후, 세계 프로야구 타격 1위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9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쳐, 타율이 0.367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정후의 타율은 한, 미, 일 3국 프로야구 선수들 가운데 1위다.

한때 4할 타율에 도전했었던 kt 위즈 강백호도 어제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에 그쳐 타율이 0.355로 떨어져, 이정후에 1푼 2리나 뒤져 있다.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는 LA 다저스의 트레이 터너가 0.322, 아메리칸리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유리에스키 구리엘이 0.317의 타율로 각각 리그 타격 1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는 센트럴리그는 히로시마 카프의 스즈키 세이야 선수가 0.317, 퍼시픽리그는 오릭스 버팔로스의 요시사 마사타가 선수가 0.339의 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백인천의 4할 1푼 2리

세계타격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정후 선수가 4할 타율을 치려면 소속팀 키움 히어로즈의 앞으로 남은 경기(23경기)에서 5할 이상의 타율을 쳐야 한다.

이정후가 아무리 타격 천재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남은 경기에 거의 모두 출전, 90타수 45안타 이상을 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이정후의 타율 4할 도전이 사실상 어려워짐으로써 프로야구 원년 백인천이 기록했었던 4할 1푼 2리의 타율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백인천은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지금의 LG 트윈스)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었다. 당시 팀이 치른 80경기 가운데 단 8경기만 빼놓고 72경기에 출전, 250타수 103안타(19홈런) 0.412 타율을 기록했다.

감독 겸 선수니까 컨디션을 조절해 가면서 출전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당시 백인천 감독 겸 선수는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타격왕(0.412)뿐만 아니라 5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백 감독은 타격왕, 최다안타(103개), 최다 2루타(23개), 득점(55), 장타율(0.747), 출루율(0.497)에서 각각 1위를 기록했었다.

백인천은 19살이던 1962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 2군 생활을 거쳐 1963년부터 도에이 팀에서 활약하기 시작,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인 1981년(긴데스)까지 19년 동안 1969안타(0.278)를 때렸었고, 1975년에는 대망의 타격왕(0.319)을 차지했었다.

백인천은 1982년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했었던 한국 프로야구선수들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발휘했었다.

당시 MBC 청룡의 유승안 포수는 “자신의 타격 루틴이 있었던 몸쪽 낮은 볼은 3루 쪽으로 바깥쪽 높은 볼은 1루 쪽으로 그리고 실투(스트라이크 존)는 여지없이 유격수와 2루수 사이로 보내서 많은 안타를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MBC 청룡의 2루수였었던 김인식은 “야구장에 돈이 널려 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주울 수도 있고,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다”며 프로정신을 심어 주었다고 말했다.

당시 백 감독은 한 수 위의 타격기술, 일본에서 20년 가까운 프로선수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프로선수로서의 생활 태도와 정신력 등을 솔선수범하면서 한국 프로야구를 10년 이상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타율 4할에 도전했던 선수들

백인천 이후 4할에 도전했었던 선수들은 많았다.

올 시즌 강백호 선수가 4할에 도전했었지만, 올림픽에서 박찬호 선배에게 핀잔(팀이 뒤지고 있는데 더그아웃에서 멍하니 껌을 씹었었다)을 들은 이후 슬럼프에 빠져, 이제는 타격 2위로 밀려났다.

1994년 해태 타이거즈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가 0.393까지 기록 했었고, 그에 앞서 1987년 고 삼성 라이온즈 장효조 선수가 0.387의 타율을 기록했었다. 장효조는 1985년에도 0.373의 고타율을 기록했었다. 1999년 마해영(당시 롯데 자이언츠, 0.372), 2009년 LG 트윈스 박용택(0.372), 2010년 7관왕에 올랐었던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0.364), 2012년 한화 이글스 김태균(0.363)이 잠시 4할을 꿈꿨었다.

2014년 최다안타를 기록했었던 서건창(키움 히어로즈 0.370), 2016년 기아 타이거즈 최형우(0.376), 2017년 기아 타이거즈 김선빈(0.370)도 4할 가까이 다가갔었다.

외국 타자로는 2015년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의 0.381이 가장 고타율이었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