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남정완 기자]대표적인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조선 업계에 빅딜이 예고된 가운데 규제당국인 공정거래 위원회가 이들 기업의 ‘경쟁 제한성’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어 기업 결합이 애초 계획보다 늦춰지고 있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열린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심사가 너무 오래 걸리는 데 경쟁 당국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은 “국내 1·2위 항공사의 기업 결합에 따른 경쟁 제한성을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타 경쟁 당국과 충돌할 여지가 있는 만큼 여러 상황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다.
공정위가 언급한 경쟁 제한성은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소비자의 선택 폭을 축소 시키는 모든 경쟁 제한적 행위를 규제하는 조항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기업 결합 시 1개 사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 사의 점유율이 70% 이상일 경우 경쟁 제한성이 크다고 판단, 원칙적으로 기업 결합을 금지하고 있다.
6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간한 ‘2021 국감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국내 공항에서 운항 중인 435개 노선 중 통합 항공사가 독과점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노선은 50.8%인 221개로 나타났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사가 운영하는 143개의 국제노선 가운데 점유율이 50% 이상 되는 노선은 32개에 달한다.
앞서 공정위는 대한항공으로부터 인수·합병 신고서를 지난 1월 14일 접수받아 10개월째 들여다보고 있다. 애초 대한항공은 공정위 심사와 경쟁 당국의 승인이 빨리 마무리되면 올해 6월30일까지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취득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심사가 지연되며 올해 말까지로 연기했다.
조 위원장은 “이번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으며 심사를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인수·합병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항공·조선 등 매출액이 일정 수준 이상 기업 간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는 해외 경쟁 당국에 신고를 거쳐 승인받아야 한다.
이에 대한항공은 올해 1월 공정위를 포함해 총 14개 국가 경쟁 당국에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중 터키·태국·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 등 5개 국가에서 심사를 통과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EU·중국·일본·베트남·영국·호주·싱가포르 등 9개 국가는 아직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들 국가 중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주력 노선에 포함되는 미국·EU 등이 승인하지 않거나 해당 지역의 노선 사업권 포기 등을 승인 조건으로 내걸 경우 현실적으로 인수·합병에 난항이 예상된다.
또 하나의 빅딜인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은 글로벌 1·3위 업체의 기업 결합으로 조선업계에서 큰 관심을 불러 모았지만, 심사가 시작된 지 2년이 넘어가면서 김이 빠지는 모양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9년 1월 인수 발표 이후 공정위를 비롯해 경쟁당국 심사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6개 국가에 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이 중 중국·싱가포르·카자흐스탄 등 3개국에서 심사를 통과했고 나머지 2곳인 EU·일본이 아직 심사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이번 기업 결합에 따른 독과점 폐해를 막고 경쟁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원활하게 끌어내기 위한 묘책 마련에 고심이 깊다.
공정거래법상 소비자 선택권뿐만 아니라 산업 정책적 효과 등을 고려해 경쟁 제한적 기업 결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도 한다. 경쟁 당국 역시 회생 불가 상태인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 독과점 우려에도 예외적으로 인수·합병을 승인하고 있다.
지난 1999년 현대차-기아차 인수·합병이 대표적 사례다. 인수·합병 이후 국내 자동차 시장의 독과점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만큼 이번에도 공정위가 예외 조항 카드를 꺼내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항공·조선 등 기업 결합은 합병 후 독과점 피해를 막으면서도 항공·조선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풀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라며 “국내외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심사에 속도를 내면서도 면밀한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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