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 경기, 두산 6회초 공격 2사 주자 만루서 양석환이 2타점 적시타를 때린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 경기, 두산 6회초 공격 2사 주자 만루서 양석환이 2타점 적시타를 때린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프로야구가 ‘코로나 19’로 인해 무관중 경기를 하면서 좀처럼 팬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은 “프로 선수들은 끊임없이 팬들에게 볼거리, 얘기꺼리 등 즐거움을 주면서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가운데 두산 베어스의 양석환 선수와 고영민 주루(3루) 코치의 ‘가위바위보’내기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만약에 프로야구 선수 모두(1군 등록 기준 260명)가 양석환 선수처럼 경기 외적으로도 볼거리를 제공한다면 더욱 팬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되지 않을까

양석환과 고영민 코치의 5만원 내기 게임

양석환은 지난 4월 10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6회에 투런 홈런을 치고 루를 돌아 들어오면서 뭔가 싱겁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루에 있는 고영민 주루(3루 코치) 코치에게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제안했고, 고 코치가 받아들였다. 그 대신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5만원을 주기로 한 것이다.

양석환은 4월 29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회에 쓰리런 홈런을 터트렸고, 3루를 도는 순간 고 코치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겼다(양석환 가위, 고영민 보).

그 후 25개의 홈런(시즌 26호 홈런 중 4월 10일 첫 홈런은 포함 안 됨)을 치는 동안 25전 10승 15패로 결과적으로 양석환이 고영민 코치에게 25만원(5번)을 잃었다.

그러나 양석환과 고영민 코치의 가위바위보 홈런 세리머니는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는 큰 볼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팬들은 양석환의 가위바위보 세리머니를 보기 위해서 매 경기 홈런을 기다리고 있다.

양석환, 10일자 부상자 명단에 올라

두산 베어스팀은 지난 1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KT 위즈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양석환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양석환은 올 시즌 126경기에서 타율 2할 7푼 26홈런을 기록했다. 팀 내 홈런 1위를 달리면서 두산의 중심 타자로 자리를 잡았다. 두산 관계자는 양석환이 "왼쪽 내복사근 미세 손상"을 당했다고 말했다.

양석환이 지난 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6회 초 스윙을 한 뒤 불편함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양석환은 10일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만수의 홈런 세리머니 볼거리 제공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한 ‘이만수와 홈런’ 관계는 영원할 것이다.

이만수는 프로야구 개막 첫 경기, 동대문야구장에서 벌어진 1982년 3월 27일 삼성 라이온즈 대 MBC 청룡(현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첫 홈런을 쳤다.

그 후 프로야구 첫 100호 홈런, 200호 홈런을 기록했고, 프로야구 원년부터 1997년까지 16시즌 동안 252개의 홈런을 때렸다.

또한 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타점의 주인공도 이만수였다.

그런데 팬들(특히 삼성 라이온즈)이 이만수의 홈런을 기다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만수는 지구상에 야구가 생긴 이후 홈런을 치고 가장 화려한 세리머니를 한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이만수는 홈런을 친 후, 마치 세상을 모두 얻은 듯이 만세를 부르는 것도 모자라 길길이 뛰며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러나 홈런을 친 본인과 팬들은 좋았겠지만, 홈런을 얻어맞은 상대 투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이만수는 은퇴한 후에야 사석에서 “현역 때는 (홈런을 얻어맞은 상대 투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미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만수의 홈런 세리머니가 상대 투수들을 자극해서, 다음 타석(아니면 다음 경기)에 반드시 몸에 맞는 볼이 날아왔다.

이만수는 ‘한 경기 4개의 몸에 맞는 볼’ 진기록을 갖고 있고, 통산 112개의 몸에 맞는 볼을 허용했는데, 거의 모두 상대 투수가 고의로 맞춘 것이었다.

이만수는 2007년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시절 ‘만약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문학구장이 매진되면 팬티 바람으로 야구장을 돌겠다고 하였고, 실제 매진되자 팬티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팬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켰고, 팬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배성서 장종훈의 기사거리 제공

1987년 빙그레 이글스 창단 감독인 배성서 감독은 연습생으로 입단한 장종훈 선수를 매우 좋아했다.

배성서 감독의 아들이 장종훈과 동갑이었고, 프로야구에서 1m 70cm대 유격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드물게 대형유격수(1m 85cm, 85kg)로 성정할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배성서 감독은 팀에서 안타가 필요로 하는 등의 중요한 시점에서 장종훈의 타석이 돌아오면 조용히 불러서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중요한 부위를 건드렸다.

장종훈은 야구 은인인 데다 팀의 감독의 그런 행동에 항의 한번 해 보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그 일이 있고 난 뒤 타석에 들어서서 번번이 안타나 홈런을 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장종훈이 자진해서 배 감독에게 그런 행동을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배성서 감독과 장종훈의 이상한 징크스는 장 선수가 포수들의 사용하는 ‘급소보호대’를 찬 후부터 사라졌다.

장종훈은 1990년(28홈런), 1991년(35홈런). 1992(41홈런) 홈런왕 3연패를 하는 등 1987년부터 2005년까지 18시즌 동안 모두 340개의 홈런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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