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병 사건'이 발생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모 풍력발전업체 내부 모습. 21일 오전 사무실 내부 불이 다 꺼져 있다. (사진=뉴시스)
'생수병 사건'이 발생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모 풍력발전업체 내부 모습. 21일 오전 사무실 내부 불이 다 꺼져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 김진영 기자]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회사 사무실에서 같은 팀 직원 2명이 생수를 마시고 쓰러진 일명 ‘생수 사건’을 둘러싼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생수에 독극물을 넣었는지, 언제 어떤 경로로 생수에 독극물이 주입됐는지 좀처럼 확인되지 않고 있다. 

생수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18일 오후 2시쯤, 양재동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와 B씨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생수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다. 이들은 물을 마신 뒤 "물맛이 이상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회복해 퇴원했으나 중환자실에 입원한 B씨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 발생 이튿날 부서 동료 K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의 자택 수색에 나섰다. 이 때 경찰은 집에서 용의자를 발견했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경찰 관계자는 “'생수병 사건'의 용의자를 찾기 위해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던 중 K씨가 무단 결근한 것을 파악해 집에 방문했다가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K씨의 집에서는 독극물 의심 물질과 용기가 발견됐다. 또 그가 사망 전에 쓰던 휴대전화 2대 중 1대에서 독극물 관련 내용을 검색한 흔적도 나왔다.
K씨의 집에서 발견된 물질은 아지드화나트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주로 농업용 살충제나 제초제 원료로 섭취했을 때 구토나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밖에도 K씨의 집에서 메탄올과 수산화나트륨 등의 화학물질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K씨의 부검 결과 1차 구두소견은 약물중독으로 추정됐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20일 K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특수상해 혐의로 입건했다. 보통 용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지만, 영장이나 강제수사 등을 위해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들이 모두 K씨의 소행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A씨와 B씨가 마신 생수병에 대한 약물감정을 의뢰했으며, K씨의 휴대전화 포렌식도 착수한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2주 전에도 이 회사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일에도 이 회사에서 혼자 근무하던 직원 L씨가 음료를 마신 뒤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을 찾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국과수는 최근 피해자 A, B가 마신 생수병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1차 소견을 경찰에 통보했다. 
이는 K씨가 이들이 마신 물에 독극물을 넣었을 것으로 본 경찰의 추측을 깨는 결과다. 

경찰은 K씨의 범죄 정황이 여전히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국과수가 조사한 생수병에선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이 음용한 물에서는 독극물이 검출됐다”며 “이는 K씨 집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국과수로 보내진 생수병이 피해자들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음용한 물이 담긴 생수병일 것으로 추측되는 것을 국과수로 보냈는데 이것이 독극물이 담겼던 생수병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경찰은 “당시 현장보존이 제대로 안 돼 있었다. 현장에 출동했을 때 회사 직원들에 의해 흐트러진 현장에서 수거한 물병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생수병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시 현장을 조사해 독극물이 담긴 생수병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독성 물질 미검출이 이번 수사 방향을 좌우할 만한 결정적 요소는 아니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K씨가 동료들의 생수병에 독극물을 넣고, 자신도 독극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하고 있다.
생수를 마신 2명 중 여성 직원은 의식을 되찾고 퇴원했지만, 남성 직원은 며칠째 의식불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