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기온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는 가을날의 오후입니다. 가을 향기가 동네 길에 가득합니다. 가을걷이에 바쁜 사람들의 몸놀림이 여느 때보다 가볍게 보입니다. 봄부터 달려온 농사일에 대한 보답이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도회지에 나가 사는 자식네들도 시골집에 내려와 부모님 일손 돕기에 바쁠 때입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니 ‘개미와 베짱이’의 현재판 같습니다.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나락을 벌써 다 말리셨어요?” “며칠은 말려야지요?”
“뭐 며칠 말려!” “날 좋으니 하루만 말려도 돼.” 하시더니 다짜고짜 
“어디서 오셨나?” “못 보던 사람이네.” 하십니다.
얼굴을 알 듯한데도 모른다 하시니 약간 당황했습니다.
“저 윗마을 노전 살아요.” “절집 위에 남밭골에요.” 
자세히 설명하는 마음으로 다가갔습니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사진 촬영할 때에 부담이 덜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을 촬영할 때는 웃는 얼굴로 살갑게 다가가야 합니다. 
“남밭골! 높은데 사네.” 목소리가 부드러워졌습니다. 웃는 얼굴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에서 동네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아니, 차는 어디 두고 걸어 다니세요?” “잘 지내시죠?” “날이 좋아 걸어 다니시나 보네요.”
바쁘게 인사말을 마치시더니 이내 나락을 널었던 그물망을 꼼꼼히 정리하기 바쁘십니다. 원래 워낙에 부지런한 분입니다. 
“선생님! 부계마을 지나다가 나락 말리는 분을 만났는데 나락을 하루 만에 다 말린다네요, 맞아요?” “난 며칠 말리는 줄 알았는데”
“아~ 집에서 먹을 건가 보네요.” “농협에 수매하려면 3일은 말려야 될걸요.” “건조가 제대로 안 되어 볍씨 수분함량이 높으면 ‘빠꾸’ 맞아요.” “그럼 골치 아파요. 다시 풀어 말리려면 엄청 힘들거든요.”
“그렇죠!” 나락을 하루만 말려도 된다는 말에 ‘이상하다’ 하며 걸었는데 바로 풀렸습니다. 
길에서 질문을 얻었고, 바로 길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털털거리며 지나치는 경운기를 무심코 돌아보았습니다. 할머니 두 분이 경운기를 자가용차처럼 타고 가십니다. 비록 털털거리는 진동이 고될지라도 할머니한테는 남의 집 ‘벤츠’보다 이 경운기가 더 좋을듯합니다. 경운기를 개조해서 찬 바람도 피할 수 있게 했고,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푹신한 방석 정도는 깔고 앉으셨으리라 믿습니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사람도 보질 못했지만, 아마 가을 햇살처럼 따듯한 사람일 겁니다. 

걷다 보면 삶의 지혜를 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길에 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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