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 리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 앞서 고 하일성 전 해설위원을 추모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두산베어스 제공)
지난 2016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 리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 앞서 고 하일성 전 해설위원을 추모하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사진=두산베어스 제공)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인 1982년 3월 27일 시구를 했던 전두환 씨가 지난 11월 23일 사망한 데 이어 1986년 청보 핀토스, 1987년 태평양 돌핀스 감독을 역임했었던 강태정 감독이 지난 12일 별세했다. 강 감독은 대구상고 감독 시절 영원한 3할 타자 장효조 선수를 키운 인물이다.

전두환 씨와 강태정 감독 타계를 계기로 프로야구 초창기, 각 분야 (선수 제외)에서 프로야구 활성화에 기여한 선구자들의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았다.

서종철 총재(1924년 5월 26일~2010년 11월 20일)

서종철 KBO 초대 총재는 육사 1기생으로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을 지낸 후 한국방공연맹 이사장을 역임하다가 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KBO 초대 총장을 맡았다. 군 시절부터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고, 19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개막식 날 자신의 아들 셋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특석 권 6장을 따로 사기도 했다.

서 총재가 재임시기인 1982~1987년중 6개 구단 구단주들은 거의 매달 한 번씩 골프 회동을 했다. 자연스레 그 자리에서 어려운 문제들이 대부분 풀렸다. 사실 삼성의 이건희 부회장 등 프로야구 구단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인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구단주들은 만사제쳐 놓고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서 총재의 위상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로야구인들은 한국 프로야구가 초기 연착륙에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은 서 총재의 야구에 대한 애정과 정열, 업무 추진력 등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김창웅 홍보실장(1939년~ 2014년 7월 11일)

김창웅 초대 홍보실장은 야구 글러브를 한 번도 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반평생을 야구인으로 살았었다. 경향신문을 거쳐 서울신문에서 발행하는 ‘TV 가이드’ 부장으로 재직하다가 1982년 프로야구 출범에 앞서 초대 홍보실장을 맡았다. 

“어린이에게 꿈을 국민들에게 여가선용의 기회를…….”의 서종철 총재 취임사를 썼고, 프로야구 초창기에 국민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데 기여를 했다.

김 실장은 1987년 3월 야구 전문 매체 ‘주간 야구’를 창간했다. 주간 야구에서는 많은 야구 전문 기자를 발굴하고 키워 내 프로야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를 했다.

프로야구 기록의 아버지 박기철(1958년 ~2016년 4월 6일)

박기철 씨는 서울 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KBO 공식 기록원 1세대였다. 박기철 씨의 주장대로 KBO는 메이저리그보다 1년 이른 1982년부터 출루율을 공식 기록으로 넣어 개인상을 시상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1994년까지 기록원으로 프로야구 경기장에 근무했다. 1995년 KBO 기획실장이 됐고 1998년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도입을 추진해 실현 했다.

박 씨는 통합 마케팅의 필요성도 역설했고, 결국 KBO 마케팅 자회사 KBOP가 출범했다. 1999년 한국야구정보시스템 이사를 지냈고, 이듬해 한국 최초의 스포츠 통계회사인 스포츠 투아이 창설을 주도했다.

영원한 야구기자 이종남(1953년~2006년6월5일)

스포츠 서울 기자 출신의 이종남 기자는 1979년 4월 한국일보에서 야구기자를 시작했다. 그 후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야구 외길을 걸었다. 그가 직접 쓰거나 번역한 야구책이 20권이 넘는다. ‘챔피언 만들기’를 필두로 “사람 좋으면 꼴찌” “야구가 있어 좋은 날”“이중노출”“야구란 무엇인가 1, 2”“스탠드의 명 심판” “심판도 할 말 있다” 등이 이 기자가 펴낸 책들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시즌 직후 KBO 공식연감도 이 기자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현대 유니콘스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다는 보도를 가장 먼저 하는 등 야구에 관한 특종을 가장 많이 한 기자이기도 하다.

 ‘자료 광’ 야구 전문 아나운서 송인득(1958년 2월 19일~2007년 5월 23일)

스포츠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은 주 종목이 있다. 야구와 기타종목 그리고 축구와 기타종목 등등

MBC 아나운서 송인득 씨는 야구전문 아나운서였다. 작고 마른 체격이지만 목소리는 굵었다.

송인득 아나운서는 ‘자료 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계가 있는 날은 최소한 3~4시간 전부터 야구장에 나와 자료를 정리한 후 마이크를 잡았다. 야구의 감각을 유지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프로야구 최고 해설가 허구연 씨는 지금도 송인득 아나운서와의 콤비를 이뤘었던 것을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국민 해설가 하일성(1949년 2월 18일~2016년 9월 8일)

한 때 ‘하구라(하일성) 허구라(허구연)로 불리며 프로야구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었다.

하일성 씨는 해설이 있는 날이면 야구장에 일찍 나와 감독과 선수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서 뒷 애기를 취재한 후, 해설하는 도중 생생한 소식을 곁들이곤 했다.

“야구 몰라요”라는 그의 말은 야구계 최대 명언중 하나이다. '야구를 다 아는 순간 재미없어진다'는 역설적 발언이다. 

하 씨는 2006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11대 KBO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사무총장 재임 시절 국가대표 야구팀을 이끌고 2006년 카타르 아시안게임 때는 실패(동메달) 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와 2009년 WBC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을 할 때 한국야구 대표 팀 단장을 맡았었다.

국내 대기업 신입사원과 임원진, 관공서 고위직을 상대로 한 해 200여 회 씩 강의하는 등 인기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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