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MZ세대는 요즘 시대의 아이콘이다. 언론기사는 물론이고 기업 마케팅, 투자동향, 소비 트렌드 조사, 심지어는 정치에서도 MZ를 호출한다. 너도나도 MZ를 부르짖는 상황에서 MZ를 모르면 우리 사회에서 행세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MZ는 1981~2010년 태생의 M세대(Millennial)와 Z세대(Generation Z)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 표현만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도대체 MZ는 누구인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특징을 갖고있으며, 어떻게 행동하는가. 뉴시안은 한국사회의 중핵이 된 MZ세대를 종합 분석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갓생과 소울리스좌, 그 어딘가에서

한경수(23.대학생)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영어와 일본어 단어 암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향점은 일상 속 즐거움과 소소한 성취감. 그는 “삶에서 가장 큰 가치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언가 꾸준히 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부지런히 운동하고 대외 활동도 참여하고 또 열심히 놀면서 바쁘게 사는게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쪽에 더 가깝다고 했다. "당장 더 좋은 몸을 갖고 싶어서 운동하고, 공부는 취업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 하루하루 알차게 채워나가자는 의미도 있다. 대외활동 역시 스펙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장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있다"고 말했다. 정소은(25, 취준생)씨는 “대학 입학 이후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걸 알게됐다. 특별한 루틴은 없지만 최대한 의미 있게 시간을 채워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 8시에 기상해 자격증 및 코딩 공부, PT및 개인 운동, 독서 등을 실천한다.

갓생러 한경수 씨의 하루 일과표.
갓생러 한경수 씨의 하루 일과표.

주말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다솜(23, 가명)씨는 요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20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때는 돈을 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겼지만 지금은 열정적인 모습을 보일수록 손해가 커지는 느낌이다. 그는 “그동안 다른 알바생 대신 필요할 때 추가 업무나 대타도 많이 하며 열정적으로 임했는데 대표는 오히려 저를 언제든지 대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이제는 그 열정을 제 전공과 관련된 부분에 나눠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경력만 5년차인 김이현(23, 가명)씨는 이른바 진상 손님의 무리한 요구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처음에는 손님과 싸워도 보고, 서비스를 드려도 봤지만 더 무리한 요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영혼 없는 대응이 모두에게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태도가 일을 하는 데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영혼이 없어도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다"며 "때로는 단골 손님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지각이나 무단 결근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갓생살기’와 ‘소울리스 좌’. 요즘 MZ 세대들의 생활 방식을 대표하는 두 가지 용어다. 갓생은 신을 의미하는 단어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합성어로, 계획하며 부지런히 살아가는 생활 태도를 말한다. 소울리스 좌는 ‘영혼 없는’을 의미하는 ‘소울리스(soulless)’와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본좌(本座)’가 결합된 단어다. 주어진 역할은 완벽히 수행하되 본인이 설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열정은 쏟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삶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보이지만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브이로그에 '#오운완' '#오하명'

갓생은 아이돌 팬 문화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자신의 학업이나 본업에 충실히 임하면서 동시에 이른바 ‘팬질’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를 ‘갓생’이라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MZ세대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를 의미하는 ‘소확성’을 중심으로 작은 성취들을 루틴화하고 즐기는 삶에 집중한다.

갓생사는 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불확실한 하루에서 내 시간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꼭 목표를 이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계획을 세워 이뤄내면 된다. 계획도 100% 완수할 필요는 없다. 60%만 달성해도 갓생살기는 이뤄진다. 

SNS에 '오운완' 해시태그로 올라온 게시글이 250만 개에 달한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SNS에 '오운완' 해시태그로 올라온 게시글이 250만 개에 달한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이들이 자신의 갓생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유튜브에 본인의 하루 일과를 직접 촬영한 영상(브이로그·Vlog)을 업로드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오하명(오늘 하루 명상)'을 태그하고 인증하는 게시물을 작성하기도 한다. 네이버 블로그도 갓생살기를 기록하는 대중적인 방법 중 하나다. 

어플(앱)을 통한 참여도 두드러진다. 자신의 일정과 목표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각자 성취한 목표에 대해 서로 칭찬 스티커를 붙이며 응원하는 앱은 물론 일정 금액을 걸고 도전하는 형태의 루틴 챌린지 앱도 등장했다. 목표 달성률이 85% 이상이면 도전 금액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고, 목표 달성률이 100%면 추가 상금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이 갓생살기를 대중화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또한 챌린지 형태로 대두되는 갓생살기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낮고, 함께 한다는 점에서 강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웃음과 현타 온 눈빛

소울리스 좌로 유명한 에버랜드 아마존 아르바이트생의 모습. [사진=유튜브 티타남 캡처]
소울리스 좌로 유명한 에버랜드 아마존 아르바이트생의 모습. [사진=유튜브 티타남 캡처]

소울리즈 좌는 유튜브 ‘티타남’ 채널에 게시된 ‘에버랜드 아마존 N년차의 멘트! 중독성 갑’ 영상 속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영혼 없는 눈빛에 긴 안내 멘트를 실수 없이 능숙하게 읊조리는 아르바이트생이 소울리스 좌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인데, 반복되는 업무에 지친 모습이지만 능수능란하게 업무를 해낸다.

영혼 없이 일관적이고 사무적인 말투를 가진 아르바이트생은 소울리스 좌가 등장하기 전에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러 개그 프로그램에서 타성에 젖은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장인을 묘사하기도 하고, 유튜브의 ‘[먹고대학생] 유형별 알바생 말투’ 영상 속에서는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 아르바이트생의 전형적인 말투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영상의 댓글도 “CGV 특유의 자본주의 웃음과 현타 온 눈빛 완전 똑같다”, “전 국민이 이 영상에 공감한다는 게 제일 웃기다” 등의 유쾌한 반응이 뒤따랐다.


하면된다 →하마터면→소확행→갓생, 소울리스

몇년전 한국 사회에서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같은 제목의 에세이들이 크게 유행했다. 당시 2030에게 유행한 밈은 ‘대충살자 ~처럼’이었다. 2030은 ‘열심히’사는 삶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하면 된다’는 기성세대의 가르침 속에 성장한 이들은 3포세대에서 출발해 N포세대가 될 때까지 ‘열심히’로는 소위 말하는 성공과 행복을 성취할 수 없음을 자각했다.

닿을 수 없는 행복을 포기한 이들의 선택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한 ‘열심히 살기’ 보다 현재 삶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욜로족(You Only Live Once의 약자, 인생은 오직 한번 뿐이라는 의미)이 되었다.

이후에는 코로나 19 확산으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경제적인 위기와 제한된 일상에서 무력감과 우울함을 겪었다. 작은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주체성을 느끼고 이를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MZ의 ‘갓생살기’는 욜로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닿을 수 없는 행복에 대신 소소한 행복을 선택한 과거처럼 MZ의 갓생살기는 거창하고 비현실적 목표 대신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목표를 확실하게 성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 목표달성이 개인의 의지에만 달렸다면 MZ의 목표달성 원동력은 타인의 시선과 응원이 되기도 한다.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갓생살기’, 인생 선배들이 올린 브이로그, SNS 채널 속 게시물 등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목표달성에 도움과 위로를 받기도 한다.

MZ 세대의 소울리스 역시 그들이 자라온 사회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학교 입학 후 단 한순간도 경쟁에서 멀어진 적이 없으며, 특히 대학 입시의 한 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은 고등학교 생활 전반을 살펴본다는 명목으로 수상경력과 다양한 활동 사항을 살펴본다.

자유를 맞이할 것 같던 대학도 취업 준비라는 그늘 아래 더 많은 스펙,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무한 경쟁시대는 더 높은 기준점을 만들어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처럼 더 많은 스펙을 자랑하는 이 앞에 2030세대는 좌절하게 됐다. 더 많은 경쟁에서 이기고자하는 마음도 스펙을 더 쌓아야겠다는 의지도 상실했다. 열정을 다하는 대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잘 하기로 결심했고 이렇게 소울리스가 탄생했다.


번아웃된 '요즘애들'의 인생리부팅

갓생러는 ‘소확성’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고 서로를 응원한다. 어떤 일이든 열정을 가지고 더 나은 나를 꿈꾼다. 사소한 부분도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 행복이다. 소울리스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하루를 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렇게 비축한 체력과 열정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더 간절한 목표에 활용한다. 열정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하루 중 내가 원하는 부분에 쏟는 것이다. 

갓생과 소울리스 그들 모두에게 ‘대충’이란 없다. 언제나 진심을 다하고 노력하기에 그들의 목표는 담백하고 현실적이다. 갓생은 소확성으로 사소한 부분에서도 성취감과 즐거움을 쫓는다. 소울리스는 내가 필요한 부분에만 열정을 쏟는 것으로 자신의 열정을 효율적으로 안배한다.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은 번아웃에 빠진 미국 밀레니얼의 초상을 담고있다.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는 부제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성을 획득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그런 상황에서 2030은 번아웃된다. 미국의 얘기지만 한국에 대입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기획·취재=조현선·박은정 기자 / 김소연·이단비·김용태·김다혜 대학생 기자단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