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인스=AP/뉴시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주일학교 강연을 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신에게 더 살게 해달라기보다는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라며 "죽는 것에 대해 마음이 평온하다"라고 전했다. 그는 "살고 죽는 것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 가족과 일,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했던 이 시간이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참석자들은 새벽부터 줄을 섰으며 일부는 전날부터 이 교회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2019.11.04.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주일학교 강연을 했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은 "살고 죽는 것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 가족과 일,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했던 이 시간이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AP)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대통령들은 힘이 세다. 막강한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임은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켜 600여만 명의 유대인과 그 열 배에 이르는 6000여만 명 가량의 군인과 민간인을 사망케 했고, 존 F. 케네디(구소련의 후루시초프)는 쿠바 봉쇄로 3차 세계대전을 막아 수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시대(the Apartheid era)를 ‘용서와 화해’로 풀어냈고, 군부독재의 상징 전두환은 86, 88 때 스포츠 장려정책으로 체육인들로부터는 크게 미움을 받지 않고 있다.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둥은 탁구를 매개로 냉전 관계의 미국과 중국(공)의 관계를 녹여내 인류 평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고, 조지 웨아는 축구에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스포츠인 최초로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됐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를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촌극을 벌였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인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사망했다.

스포츠는 그 나라 대통령들의 관심, 그리고 정책 변화에 따라 활성화되거나, 침체되곤 했었다.

지구촌의 현역, 역대 대통령(수상)들은 그동안 어떠한 스포츠 정책을 폈고, 그 나라의 스포츠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았다.

<이 연재물은 기자(시간의 물레 간 2013년, 대통령과 스포츠)의 저서를 보강한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지미 카터 찾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인 지난 4월 29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자택을 찾아서 화제가 됐다. 

언론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과거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8년간 부통령으로 있었던 만큼 그를 가장 먼저 찾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간 셈이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영부인인 질 여사와 함께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45분간 머물렀다.

바이든은 올해 78살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 현직 대통령이고, 카터는 96살의 최고령의 전직 대통령이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꼭 30년 전인 지난 1989년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 전직 대통령으로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과 동남아 쓰나미 사태, 아이티 지진 등 미국뿐 만 아니라 지구촌에서 굵직한 사태가 날 때마다 직접 봉사단을 조직해 참여해 왔다.

이같은 선한 영향력 덕분일까. 카터 대통령은 자국민들로부터 퇴임 후 더 존경 받는 대통령들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지미 카터의 주일학교 강연이 열리던 날,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이 전날부터 교회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방한(訪韓) 중 팬티바람으로 달려

“어! 팬티 차림이잖아!” 

1979년 7월 1일, 아침 조간신문을 받아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믿기 어려웠다.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반바지 차림으로 병사들과 함께 군부대를 달리는 모습이 찍혔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짧은 팬티 차림으로 달리는 모습은 적어도 당시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는 계층도 없지 않았다.

카터 대통령은 1979년 6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 곧바로 휴전선에서 겨우 2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는 동두천에 있는 주한 미군 2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로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미군 부대에서 하룻밤을 잔 카터는 일어나자마자 약 30여 분간 흰 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하고, 미군 장병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즐긴 뒤 한국 측이 마련한 공식행사에 참석했다.

그사이 함께 내한한 부인 로잘린 여사와 딸 애임 양은 숙소인 미국 대사관저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와 한국의 극도로 악화된 인권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군 부대로 날아가 태연히 조깅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의 이같은 행동은 정치적 의도가 담겼거나, 유난을 떤 게 아니었다. 카터는 조깅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경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 정부의 고충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방 7개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도쿄의 복잡한 거리에서도 조깅을 즐겼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침에 눈만 뜨면 달린 것이다.

사실 달린다는 것은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인체의 모든 조직을 동원하는 달리기는 반드시 생리적으로 고통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종종 자신의 종목 외 마라톤 선수들을 가장 존경한다는 인터뷰가 전해지기도 한다.

카터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플레인스 고등학교 때 농구와 미식축구를 했고, 아버지가 땅콩 농장에 클레이 코트를 만들어 줘서 줄곧 테니스를 쳤다. 조지아 강에서 카약과 커누를 타며 놀았고, 정계에 입문해서는 주로 메이저리그를 관전했다.

카터가 평생 달린 거리를 합하면 10만km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라톤 풀코스를 42번 완주한 마라토너 이봉주는 자신의 현역 시절에만 약 20만여km를 달렸을 것으로 회상했다. 어마어마한 조깅 애호가인 셈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이 다 조깅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건강 달리기에 관한 한 인식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건강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운동하는 것을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일로 취급했다. 히피 문화로 상징되던 당시 사회 분위기는 평화, 자유, 사랑 같은 개념을 숭상하면서 경쟁 개념을 싫어했다.

미국에서도 1960년대 말 달리기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일이 일어났다. 유명한 ‘유산소 운동’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쿠퍼라는 의사 때문이었다. 그 후 미국에서는 이른바 ‘건강 선진국’이라고 불리며 조깅 붐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해 1970년대 미국에서는 이미 달리기가 건강 유지의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빌 클린턴도 지난 1993년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녹지원을 15분간 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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