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룡감독이 8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헸다. 오른쪽부터 김감독, 심종섭선수, 한국전력 박종학 선수, 대한육상연맹 정영훈과장 .(사진=김재룡감독 제공)
김재룡감독이 8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오른쪽부터 김감독, 한국전력 심종섭, 박종학 선수, 대한육상연맹 정영훈과장 .(사진=김재룡감독 제공)

[ 이종세 전 동아일보 체육부장·용인대 객원교수]

 “제자의 올림픽 입상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달 돌아가신 오 감독님의 뜻을 받들어 25년 만에 한국 남자마라톤이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7일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 국가대표 오주한(33·청양군청·케냐명·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등을 지도하기 위해 해발 2300m 고지대인 케냐 캅타갓으로 떠난 김재룡(55·한국전력) 감독의 모습은 결의에 차 있었다. 지난 5월 5일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서울에서 사망한 오창석(59·백석대 교수) 남자마라톤 국가대표팀 감독 후임으로 최근 확정된 김 감독은 지난 4일 만난 자리에서 시종 무거운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김 감독은 지난 4월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 국가대표로 추가 선발된 심종섭(30·한국전력)과 함께 8일 케냐 현지에 도착, 2019년에 이미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 출전 티켓을 딴 귀화선수 오주한 등의 도쿄올림픽 대비 훈련을 본격적으로 지도하게 된다. 김 감독은 6월과 7월 약 두 달간 오주한과 심종섭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 올린 뒤 8월 1일 도쿄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 입성한다. 과연 한국 마라톤이 8월 8일 펼쳐지는 올림픽 레이스에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봉주 은메달) 이후 25년 만에 메달을 딸 수 있을까?

다음은 김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오주한은 메달권 입상, 심종섭은 20위권 진입이 목표 

-먼저 전임 오창석 감독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마음이 착잡할텐데 케냐 현지로 떠나는 소감은.
“오 감독님은 평소 마라톤의 훈련 이론과 실제를 두루 갖춘 존경하는 선배였습니다. 오 감독님은 지난 4월 4일 국가대표 선발전(경북 예천)에서 저희 팀 소속 심종섭이 올림픽 참가 기준기록(2시간 11분 30초)을 통과하자 카톡으로 축하해주시며 “빨리 케냐로 와 오주한을 비롯 세계랭킹 1위 엘리우드 킵초게(37·케냐) 등과 함께 훈련하자”고 하셨습니다. 심종섭도 케냐의 고지훈련을 원했고 저 역시 세계적인 선수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알고 싶어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케냐의 비자 연장을 위해 일시 귀국한 오 감독님이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입원 한 달도 안돼 세상을 떠나셨고 제가 그 자리를 맡게 돼 황당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직을 맡은 이상 오주한은 메달권 입상을, 심종섭은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선수 지도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오 감독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감독은 필자에게도 카톡으로 ‘4월 11일 일시 귀국해 케냐 비자의 연장 수속을 마치면 바로 케냐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뵐 수 없다’고 바쁜 일정을 알려왔으나 갑작스런 고열로 4월 18일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에 입원했고 증세가 악화되자 4월 26일 군 복무중인 장남을 대한육상연맹에 보내 대표팀 감독직 사표를 전달했으며 5월 5일 새벽 운명했다. 오 감독은 서울삼성병원 입원 하루 전 사태의 심각함을 의식했음인지 김재룡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김감독이 남자대표팀을 맡아 오주한까지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서울삼성병원은 오감독의 직접사인이 ‘다발성 장기부전’이라고 밝혔는데 진료를 담담한 의료진은 “아프리카 풍토병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처방을 할 수 없었다”고 유가족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력은 자신 있다. 이제는 스피드 보완이 과제다

-이제 도쿄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난 2개월 동안 ‘감독 공백’이 있었다. 메달 후보인 오주한의 훈련에 차질을 빚지는 않았는지.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주한이 부상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오주한은 지난 2011년부터 돌아가신 오 감독님의 스케쥴에 따라 훈련해왔으며 지난 4월 오 감독님이 귀국한 이후에는 오 감독님을 보좌했던 엘리자 무타이(42)코치가 지구력 위주의 훈련을 시켜 왔습니다. 제가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뒤 무타이 코치는 매일 카톡으로 훈련 동영상을 보내왔는데 오주한은 체력이 워낙 좋은 선수여서 이제는 지구력보다는 스피드 보강에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오주한은 2018년 오창석 감독의 주선으로 우여곡절 끝에 귀화에 성공했으며 2019년 10월 한국선수로는 맨 먼저 경주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8분 42초의 기록으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었다. 작년 2월부터 도쿄올림픽에 대비, 오 감독 지도 아래 케냐 캅타갑 고지대 오르막 흙길에서 체력훈련을 해온 오주한에게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 동안 스피드 강화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키겠다는 것이 김감독의 복안이다. 

올림픽은 무더위가 변수…황영조도 예상깨고 우승

-세계 정상급 마라토너들이 선두 다툼을 벌일텐데 오주한의 가능성은?
“레이스 총성이 울리는 8월 8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삿포로의 기온은 섭씨 20~25도로 섭씨 30도가 넘는 도쿄보다는 시원하겠지만 마라톤하기에는 더운 날씨입니다. 따라서 우승기록은 2시간 7~8분대로 예상되는데 2시간 5분 13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보유한 오주한도 메달 후보 가운데 하나이며 컨디션에 따라 우승도 넘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2018년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 1분 39초의 세계최고기록을 세운 킵초게 등 2시간 2~3분대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이 초반부터 치고 나가겠지만 날씨가 무더운 올림픽에서는 변수가 많아 경기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승패가 엇갈리게 됩니다. 특히 오주한은 케냐에서도 가장 더운 트루카나지역 출신으로 더위에 강하며 특히 체력이 뛰어나 메달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겠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10위를 했던 김감독은 “당시 우승한 황영조의 개인 최고기록이 2시간 8분 47초로 금메달 후보는 아니었으나 섭씨 30도의 무더위 속에서 2시간 13분 23초의 기록으로 일본의 모리시타를 꺾고 ‘몬주익의 신화’를 썼다”면서 “도쿄올림픽 마라톤 역시 더위 때문에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16년 리우올림픽 우승자인 세계랭킹 1위 킵초게는 작년 10월 쌀쌀한 날씨 속에 열린 런던 마라톤에서 대회 3연패를 노렸으나 2시간 6분 49초로 8위에 그쳐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교시절 육상 중 장거리선수로 활약하다 1985년 한국전력 마라톤팀에 스카우트된 김 감독은 1991년과 1992년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했고 1993년 4월 보스턴 마라톤 준우승, 그해 8월 독일 시투트가르트 세계선수권대회 남자마라톤 4위를 했으며 1995년 소속팀 코치를 거쳐 2016년 감독으로 승진, 6년째 한전 마라톤팀을 이끌고 있다.

 “저 역시 현역시절 국제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마음같아선 오주한을 이번 올림픽에서 꼭 우승시켜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오창석 감독님에게 진 빚도 갚고 싶습니다.”
7일 인천공항에서 케냐행 에티오피아 항공에 오르기 전 전화로 알려온 김감독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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