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약속 시간에 꽉 차게 가는 버릇이라, 만나는 곳에 몇몇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여야 하는데 웬일인지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카톡을 다시 보니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왔습니다. 시간을 잘못 알았습니다. 엉덩이가 가벼워서 30분의 시간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후다닥 들판으로 갔습니다. 들판은 지루할 틈 없이 날마다 새롭습니다. 하늘 빛 품어 무럭무럭 자라는 벼는 어제 오늘이 다릅니다.

 

 

한 자리 잡고 논에 비친 하늘 그림자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들판은 가슴 설레는 그 무엇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들판을 뚫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람이 멀리 보입니다.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대축 마을 아저씨입니다. 근 15년 이상 들판 길에서만 마주치는 사이입니다. 성함은 모르지만 언제나 반갑게 인사합니다.  

 

 

”지금 우렁이 뿌릴 땐 가 보죠? 키우신 거예요?’
“이거 파는데가 있어. 주문하면 들판까지 다 가져와”
“우렁이 농사 효과가 좋아요?” 
“좋으니까 하지! 지금 논에 벼 밖에 안보이지만 숨어있는 잡초 싹들이 많아. 그놈들을 얘들이 싹 다 뜯어 먹어.”

 

 

우렁이를 논에 뿌리시더니 또, 휙 가셨습니다. 

대답이 바쁘셔서 질문도 바빴습니다. 정말 바쁘게, 부지런히, 농사를 잘 짓는 아저씨임에 틀림 없을듯 합니다. 그렇게 움직이십니다.

 

 

대축 아저씨는 다시 들판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셨고 나는 하늘 그림자 품은 들판을 멍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삶의 시간은 이렇게 순간 왔다 사라지나봅니다. 

 

 

약속시간을 잘못 알고 30분 일찍 나오지 않았다면, 들판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장면은 이세상에 있을 수 없습니다. 

30분 일찍 나와, 들판길을 걸어서 마주한  4분(첫 장면에서 마지막 장면까지) 간의 만남이었습니다. 

매 순간의 선택으로 삶이 이어집니다.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일찍 나왔으나 약속 장소엔 또 늦었습니다. 한 소리 들었습니다. 뭐 사는게 그렇지요.

[ 이창수 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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