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00m. 노전마을 우리집 해발고도가 대략 400m입니다. 악양 동네 민가로는 꽤 높은 편입니다. 어찌하다 보니 절집보다 위에 있습니다.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다니기도 쉽지 않고, 더러 산짐승(멧돼지, 고라니, 뱀 등)도 가까이 마주쳐 깜짝 놀랄 때도 많습니다. 높은 곳에 사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러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그에 대한 보답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바로 앞마당에서 무지개를 실컷 즐겼습니다.

 

앞산 너머에 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안았습니다. 
어릴 적, 무지개를 향해 걸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무지개가 닿은 곳이 궁금해 골목길을 한참 지나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멀리 갔다 온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얼마 못 가고 돌아왔을 겁니다. ) 갑자기 그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묻어둔 깊은 기억이 솟구쳐 올라 무지개 저편으로 날아오른 기분입니다. 
그때는 오늘을 기약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라 흐뭇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무지개 너머를 궁금해하기도 하고, 무지개를 보고 달려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원을 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무지개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줍니다. 

 

 

 

무지개를 물리적으로 들여다보면 대기 중 수증기에 빛이 반사나 굴절되면서 나타나는 광학적 현상입니다. 실체가 아닌 빛에 의한 환각입니다. 멀리서 보면 있으나 다가가면 사라집니다. 세상살이가 ‘물리적 이해’만 있지 않습니다. ‘정서적 이해’도 있습니다. 정서적 이해로 말하자면 무지개가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고 하니, 허상을 ‘상이 없다’가 아니라 ‘상이 비어있다’로 이해한다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지혜의 거울처럼 ‘무한성’을 지닌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이의 희망을,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변화의 꿈을 무지개는 다 담을 수 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무지개를 향해 꿈을 말하세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정서적 이해는 다양한 해석을 이끄는 개인차가 있어서 좋습니다. 헛소리가 길어진 걸 보니 무지개를 너무 멀리까지 쫓아간 것 같습니다. 

 

 

빛이 사라지니 무지개도 사라집니다. 또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날 무지개를 기다립니다. 

[ 이창수 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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