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끄러워져서 한적한 곳을 찾아 국사암 연못을 또 갔습니다. 대다수의 연꽃이 시들어 떨어졌습니다. 연꽃을 기대했던 마음이 사라지니 오히려 연못의 구석구석을 더 주의 깊게 둘러보았습니다. ‘破하면 覺한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지금이 딱 그렇습니다. 연꽃 생각을 깨트리니 또 다른 세상이 열렸습니다. 깨트리면 깨닫는답니다. 

 

지는 꽃잎 하나 남았습니다. 곧 떨굴 겁니다. 꽃이 피면 핀대로, 지면 진대로의 모습에 집중했습니다. 바람이 불든, 시간이 지나든 하나 남은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이 이듬해에 필 연꽃의 시작입니다.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꽃잎들이 내려앉았습니다. 물 위, 세상 밖의 화려함은 지났고 물밑은 이듬해 연꽃을 향해 치열한 시간으로 채워질 겁니다. 지는 꽃잎의 아쉬움을 연잎이 보듬어 줍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연잎이 아침이슬을 안고 있습니다. 사실은 연잎 표면에 있는 미세한 돌기가 이슬을 밀어내고 있는 게 맞습니다. 그런 이유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그저 연잎의 이슬을 이리저리 보며 ‘아트’를 완성하려 노력했습니다. 바람 불어 이슬이 미끄러지기 전에 서둘러 ‘아트’ 했습니다.  

 

 

연못의 한 귀퉁이에서 깊은 세계를 마주했습니다. 바람이 물을 일으켰고, 출렁이는 물 따라 빛도 일렁입니다. 연잎은 이슬을 받아내고 이슬은 빛을 받아냅니다. 빛과 바람의 흔적을 같이한 연잎은 생명의 시간을 이어갑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한결 부드럽게 지납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라져 없어질 시간입니다. 꽃잎도 버리고 연잎도 버려서 빛과 바람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생명은 흘러갑니다. 피면 지고, 돌아오면 돌아가는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삽니다. 늙은 연잎이 아직은 어린 연잎을 안고 있습니다. 아침 이슬이 밝습니다. 

[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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