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법 요란해 덜렁 잠을 깨니 새벽 2시. 오늘따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일어났습니다. 늙었나 봅니다. 이부자리 정리하고 다실로 갔습니다. 먼저 따뜻한 물로 속을 달래고 녹차로 시작해서 발효차를 거쳐 보이차까지 이어지는 찻시간이 길었습니다. 유난히 일찍 일어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깊은 어둠이 틈을 내어 밝음에 길을 열어주는,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는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새벽 시간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이 목을 넘어 배를 따뜻하게 하고 그 따듯한 기운이 어깨를 거쳐 찻잔을 잡은 손가락까지 퍼지면 호흡이 깊어집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호흡을 봅니다. 들숨과 날숨의 반복적인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깊은 생각에 듭니다. 이때가 매일 새로 태어난 나를 보는 시간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나, 나를 보다’. 즐겨 새기는 말입니다. 

내가 나를 만나는 인연을 치고 들어가면 결국 그 끝은 35억 년 전에 시작한 생명의 역사입니다. 누구나 그렇고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생명체의 만남과 헤어짐이 생명의 역사이며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 시간의 흐름을 깨우치면 자연의 도리를 깨우친 것과 다름없습니다.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넘어서는 길이 이 도리에 있으나 오늘도 망상의 구름에 갇혀 길을 헤맵니다. 푸른 비구름이 훅 다가와 망상이 깊었습니다. 

 

어둠이 밝음을 만났고 밝음이 어둠과 헤어졌습니다. 어둠을 남김없이 다 하니 밝음이 옵니다. 이렇듯 누구든, 무엇이든 원 없이 다 쓰고, 다 비워야 새날이 옵니다. 그러함은 새날을 맞이할 수 없을 때까지도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또 새날을 맞이합니다. 생명은 35억 년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아직 다 비우지 못해 새날을 맞이했습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