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안개 어슴푸레한 들판으로 향했습니다. 추석 보름달은 지났으나 들판의 나락은 달빛처럼 누렇게 익어갑니다. 가을볕이 좋아 나락이 속을 알차게 채우고 있습니다. 들판을 향하던 발걸음을 동정호로 돌렸습니다. 멀리서도 강력하게 보이는 핑크뮬리의 분홍빛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동정호 한가운데 있는 섬에 핑크뮬리가 가득합니다. 경주 첨성대 근처에 핑크뮬리를 심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핫플’ 된 후, 많은 지자체가 핑크뮬리를 온갖 곳에 잔뜩 심어 널리 퍼트렸습니다. 꽃 피기 전에는 ‘외래종 식물을 왜 이렇게 많이 심지’ 했으나, 꽃이 피니 ‘예쁘긴 예쁘네’로 말이 바뀐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핑크뮬리는 미국원산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생태계 위해성 식물이긴 합니다. 저것이 꽃인지, 풀인지 모르겠고, 색깔은 어찌 그렇게 강력한지 사람 홀리기 딱 맞춤입니다. 양귀비보다 더 셉니다. 여하튼 묘한 꽃 묘하게 보았습니다. 묘하게 볼 만합니다. 

가을볕이 나락만 익히는 게 아니라 들판을 걷는 우리의 등판도 익혔습니다. 들판 길이 제법 길고 날도 더워 아침 걸음이 힘들었습니다. 잠시 쉴 겸 들판이 잘 보이는 둑에 앉아 수다를 떨었습니다. 

‘오늘 구례 장날인데 장에 가서 막걸리 한 잔에 밥도 먹고 서시천에 가서 코스모스 사진 찍을까요?’ 슬며시 낚싯줄을 던졌습니다. 일 초도 지나지 않아 ‘그랍시다’ 하고 바로 낚싯밥을 채었습니다. 

해서 구례장에 갔고, 굳이 병어, 전어, 붕장어, 가오리가 함께 담긴 모둠회 접시 비우기와 주꾸미 숙회를 곁들인 막걸리병 비우기 운동은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시끌벅적한 아침 식사를 잘하고 서시천에 갔습니다. 서시천의 코스모스 촬영은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해결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푹 잤습니다. 너무 이른 아침부터 들판을 달려서 그렇습니다. 그 외 다른 이유는 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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