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000m 결승 경기. 최민정과 심석희가 넘어져 미끄러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000m 결승 경기. 최민정과 심석희가 넘어져 미끄러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필자가 1988년 2월 캘거리 동계올림픽을 취재할 때 만해도 한국 빙상은 걸음마 단계였다. 당시 신문, 방송, 통신사 등 중앙언론사가 모두 특파원을 파견했는데 그 이유는 그해 9월 하계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는데다 사상 처음 동계올림픽에서도 우리나라가 메달을 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배기태(당시 23세)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배기태는 500m에서 5위, 1000m에서는 9위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다만 시범종목으로 치러진 쇼트트랙에서 2개의 금메달이 나와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런 한국 빙상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정식종목)에서 김기훈 등이 2개의 금메달을 따면서 메달 사냥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각각 6개의 금메달을 추가한 한국 빙상은 세계 10위권 반열에 올랐다. 실제 한국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14위)과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13위)만 빼고 1992년부터 종합순위 10위안에 들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설상, 썰매에서도 메달이 나왔으나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따낸 메달 72개(시범종목 2개 포함) 가운데 93%인 67개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에서 나와 빙상경기가 한국 동계스포츠의 효자종목임을 입증했다. 

빙상연맹, 코치 진정은 묵살…언론보도엔 호들갑

하지만 한국 빙상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감독 선임을 하지 못해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올림픽을 치러야하며, 여자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24 ‧ 서울시청)도 중도하차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무능 행정까지 더해져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사상 최악의 흉작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특별감사를 받은 끝에 대한체육회 관리단체의 불명예를 뒤집어쓴 빙상연맹은 2년 넘게 회장 공백 상태를 이어가다 작년 12월 가까스로 윤홍근 BBQ 회장을 제33대 회장으로 영입했으나 무능 행정은 개선되지 않았다. 국회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심석희에 대한 성범죄 혐의로 구속 재판중인 조재범 코치가 지난 8월 ‘2018 동계올림픽에서 심석희가 레이스 도중 최민정(23 ‧ 성남시청)에게‘고의충돌’했고, 조항민 코치에게 동료 비하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빙상연맹이 묵살했다고 YTN 등이 14일 보도했다. 이에대해 빙상연맹은 선수 사생활 등에 관한 내용이어서 그냥 넘어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빙상연맹은 조재범 코치가 진정한 내용을 인터넷매체 디스패치가 지난 8일 보도하자 부랴부랴 진상조사위원회를 열고 사실 파악에 나서는 한편 심석희를 진천선수촌에서 퇴촌 조치했다. 이에따라 심석희는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됐다. 문체부는 심석희에게 수여할 대한민국 체육상을 보류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체육상은 여자배구 김연경(33 ‧ 상하이)이 받았다.

평창올림픽 당시 처방없이 미루다 사태 커져

문제는 빙상연맹의 무능 행정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어리석음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심석희는 3년 8개월 전 평창올림픽 당시 ‘고의충돌’혐의로 4위를 했음에도 실격했고, 동료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이 도마에 올랐음에도 어물쩍 넘어 가 오히려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시 문제를 해결했다면 지금은 올림픽 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베이징 올림픽에 나갈 대표팀은 감독 없이 전임코치체제로 나서야 할 형편이다. 감독 공모 결과, 선정 기준을 충족한 지도자가 없었다고 한다. 감독 부재는 팀워크를 생명으로 하는 대표팀 훈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계주의 경우 100%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다. 빙상 전문가들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오랜 회장 공백에다 고질적인 파벌싸움으로 베이징 올림픽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심석희 악재’까지 터져 더욱 힘들게됐다”고 걱정했다. 쇼트트랙 스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의 중국 귀화 등으로 어수선한 한국 빙상이 조재범, 심석희 등이 빚은 악재를 딛고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어떤 결과물을 낼지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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