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의 지리산 이야기] (20) 광한루원 달맞이 놀이
[이창수의 지리산 이야기] (20) 광한루원 달맞이 놀이
  • 이창수 사진작가
  • 승인 2021.10.19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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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남쪽으로 오신다더니 어디쯤이세요?’ 
‘어~ 난 북쪽으로 가는데’ 
‘남쪽이 아니고 북쪽이었어요?’ 
‘남쪽으로 가려다 북쪽으로 바꿨지.’ ‘이따 남원으로 오시지 저녁이나 같이하게’
‘네. 그럼 5시쯤 갈게요’

남원에 사는 스님이 자전거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섬진강을 끼고 화개, 악양으로 내려오는 길이고, 북쪽으로 향하면 장수, 전주 방향입니다. 남쪽으로 오면 우리 동네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전화했다가 때아니게 남원으로 저녁 식사하러 갔습니다. 산중생활은 이렇듯 흘러가는 대로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광한루원을 거닐었습니다. 요즘 갑자기 쌀쌀해진 밤바람이 달맞이하기에 오히려 좋았습니다, 

광한루원은 1444년에 전라감사 정인지가 ‘광한루’라 이름을 붙였는데 천상계의 달나라 궁전을 상징합니다. 신선 사상과 천상의 우주관을 품고 있는 정원입니다. 광한루원 곳곳에 500년 전후의 나이가 든 버드나무, 팽나무, 수양버들나무들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완월정 처마 밑에서 버드나무 사이로 달을 보니 오늘 밤에 완월정을 가장 잘 즐긴듯합니다. 

광한루는 조선 시대 지방관아에서 지은 누각 중 가장 으뜸입니다. 진주 촉석루, 삼척 죽서루, 밀양 영남루도 지방관아의 누각들입니다. 광한루는 달나라 궁전이고, 그 앞의 연못은 은하수를 상징하고,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만난다는 오작교를 놓았으니 옛 양반네들의 이상세계는 우주를 넘나듭니다. 거기에 야간 조명을 곳곳에서 비추니 천상계가 따로 없습니다. 

광한루 연못에는 삼신산사상을 바탕으로 만든 봉래섬, 방장섬, 영주섬이라는 세 개의 섬이 있습니다. 삼신산은 신들의 산을 상징하는데 봉래는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제주도를 말합니다. 광한루원은 성리학적 세계관, 풍수지리, 음양오행, 신선 사상 등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온갖 사상들의 총집합체입니다. 대나무 숲이 가득한 봉래섬을 지나면 방장정이 있는 방장섬으로 이어집니다. 전설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오작교에서 놀던 춘향이와 이몽룡이 광한루원에서 인생 최고의 시간을 만들었다면 우리 또한 지금 이곳을 거닐며 인생 최고의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신선들이 산다는 삼신산을 돌고 나와 천상계의 다리인 오작교도 건넜고, 조명 빛 가득한 은하수 연못을 돌았으니 더 이상의 최고는 없습니다. 

북쪽으로 갔던 스님이 고맙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주간에는 입장료가 3000원인데 야간에는 무료입니다. 야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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