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의 장명부. (사진 = 일본 주간베이스볼 캡처)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의 장명부. (사진 = 일본 주간베이스볼 캡처)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 ]

“어린이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온 국민에게 건강한 여가선용을.”

1982년 프로야구 출범당시 슬로건이다. 지난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KBO)가 어느덧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울고 웃었고,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그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200승 이상을 올린 투수와 400홈런을 넘긴 타자,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문 40(홈런)-40(도루)을 달성한 선수, 심지어 30승을 올린 투수도 있었다. 또한 세계신기록인 9경기 연속홈런의 자랑스러운 기록도 나왔다.

KBO리그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지구촌 최고의 야구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선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다가 KBO리그로 컴백한 선수도 생겨났다. 

초창기 선수들은 일반 직장인의 10년 치 연봉 2400만원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150억원(4년 동안)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도 나올 정도로 파이가 커졌다.

프로팀은 6팀에서 10팀으로 늘었고, 1998년 이후 외국 선수들도 합류해 프로야구의 ‘양과 질’이 매우 높아졌다. 명실상부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아 매주 수요일, 재미있고 의미 있는 40개의 스토리로 찾아뵐 예정이다. [편집자주]

 

장명부는 한국 프로야구의 풍운아였다.

2005년 4월 13일 자신이 1년 전부터 운영해 온 일본의 와가야마현의 마작 하우스에서 54세를 일기로 사망한 장명부는 한국 프로야구의 풍운아였다.

장명부는 1983년 삼미 수퍼스타즈 팀에서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난카이, 히로시마에서 15년 동안(91승 84패, 3.68) 뛰었던 경험을 살려 걸음마 단계였었던 한국 프로야구를 쥐락펴락했다.

당시 한국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속도가 채 140km를 넘지 못했는데, 150km 안팎의 강속구에 완벽한 커맨드로 한국 타자들을 농락하다시피 했다.

장명부의 30승(16패)도 놀랍지만, 혼자서 60경기를 치렀고, 무려 427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혼자서 47경기를 책임진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초인(超人)적인 활약을 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프로야구는 팀당 100경기를 치렀다)

장명부는 한국 선수들뿐 만 아니라 심판들 조차도 한 수 아래로 여겼었다.

아웃코스로 살짝 빠지는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으면, 다음에는 공 반개 정도 더 빠지는 공을 던졌고, 그 공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으면 이번에는 아예 한 개 정도 더 뺐다. 

결국 심판이 ‘보더 라인’에서 두 개 정도 빠지는 공도 스트라이크를 외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심판도 사람인지라 정신을 차려 볼을 선언하면 장명부는 ‘싱긋’ 한번 웃고는 다음에는 보더 라인 안쪽으로 던졌다.

마치 기계 같은 커맨드로 심판들을 데리고 놀았다고 볼 수 있었다.

1986년 7월 26일 잠실야구장, MBC 청룡 대 빙그레 이글스전.

장명부는 1983년 혹사로 그다음 해부터는 내리막길을 걷다가 창단 팀 빙그레 이글스팀(현재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에이스 이상군 투수를 내 세운 빙그레 이글스가 MBC 청룡에게 6대0으로 앞섰고, 6회 말 들어 체력이 떨어진 이상군이 얻어맞기 시작해 5점을 내주고 5대6으로 역전 위기에 몰리자 배성서 감독은 장명부를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렸다.

장명부는 6회 말 위기를 벗어났지만, 8회 말 동점(6대6)을 허용했고, 9회 말 들어서 선두 타자 안언학에게 안타, 이어서 박철영에게도 안타를 얻어맞아 무사 1, 2루의 패전 위기에 몰렸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수입된 히든 볼

그때 장명부는 일본의 재일 동포 선수들이 한국 프로야구에 가장 악영향을 끼쳤던 히든볼(Hidden ball), 즉 속임수를 썼다.

빙그레 이글스 유격수 김종수에게 2루 주자 안언학 선수 몰래 공을 건넨 후 마운드에 올랐고, 2루수 안언학이 리드를 하다가, 공을 감추고 있었던 김종수에게 태그아웃을 당한 것이다.

빙그레 팀에서 안언학이 아웃이라고 주장을 하자, 심판 4명이 모여 합의 끝에 장명부의 ‘투수 보크’를 선언을 했다.

투수보크는 발생하는 순간, 그를 본 심판이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판들이 ‘4심 합의’로 투수보크를 선언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장명부로 볼 때 9회 말, 6대6, 1사1루가 될 것이 무사 2, 3루가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장명부는 다음 타자 박흥식을 고의사구로 걸려 내 보내 무사 만루를 자초했다. 이어서 김재박 타석 때 세트포지션 상황에서 왼발을 홈 쪽으로 향하면서 3루로 견제구를 던지는 ‘고의보크’를 범해 결승점(6대7)을 내주고 유유히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기 종료를 선언한 심판들, 경기에서 이긴 MBC 청룡, 15연패째를 스스로 자초한 장명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본 빙그레 배성서 감독, 이를 귀한 시간을 내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와서 본 관중들……. 모두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명부는 그해 1승 18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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