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 경기, 한국 황대헌이 캐나다 스티븐 두보아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 경기, 한국 황대헌이 캐나다 스티븐 두보아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 기영노 편집위원 ]지난 11일 장자커우 내셔널 크로스센터에서 벌어진 15km 클래식에서 핀란드의 이보 니스카넨 선수가 1위로 골인했다. 15km를 전력 질주한 니스카넨은 탈진해 설원 위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잠시 후 기력을 회복했지만, 골라인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는 사이 2위 알렉산더 볼슈노프 등이 속속 도착했다.

니스카넨은 도착하는 선수들 한명 한명마다 손을 내밀며 격려했다. 마지막 주자인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퀸타나 선수가 94번째로 들어오자 등을 두드려주며 “잘 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금메달 세리머니도 하지 않고 그 말 한마디 해주기 위해 추위 속에 20여분을 기다려준 것이다.

퀸타나는 나중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니스카넨에 대해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겠다”고 썼다.

USA 투데이는 니스카넨이 “선수로서 서로가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니스카넨은 “우리 모두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다. 작은 나라들은 (스키 주준이)최고의 나라들 만큼 충분한 뒷받침을 해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동, 하계 올림픽에 출전한 수천 명의 선수들을 상대로 성적이 상관없이 뛰어난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선수에게 쿠베르탱 페어플레이 상을 수여한다. 쿠베르탱 페어플레이상’은 이탈리아의 봅슬레이 선수였던 유제니오 몬트에 의해서 탄생했다.

유제니오 몬티는 지독한 올림픽 징크스를 앓고 있었다. 1952년부터 봅슬레이 선수로 활약하며 무려 9번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올림픽 금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 출전한 올림픽이었던 1956년 이탈리아의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는 2인승과 4인승에 모두 출전했지만 은메달 2개에 머물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2인승에는 2팀, 4인승에는 1팀만 출전했는데, 동료선수가 출전한 2인승 팀이 금메달을 차지했고, 유제니오 몬티가 탄 썰매는 은메달에 그쳤다. 4인승도 스위스 팀에 금메달을 빼앗기고 은메달에 머물렀다.

4년 후에 벌어진 1960년 미국 스쿼벨리 동계올림픽에서는 봅슬레이와 루지 시설이 없어서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다시 4년 후를 기다려야 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유제니오 몬티에게 최고이자, 최후의 목표였다. 드디어 무려 8년을 기다린 끝에 몬티는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런데 앞서 가던 라이벌 영국 팀의 썰매가 봅슬레이의 날을 고정한 나사가 빠지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를 본 몬티는 자신이 탈 썰매의 나사를 풀어서 영국 팀 썰매를 고쳐 주고 자신은 레이스를 포기했다.

몬티의 이탈리아 팀은 영국과 세계 정상을 다투는 처지여서 영국 팀의 결장은 곧바로 금메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벌 팀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4년 후를 기약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영국 팀은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유제니오 몬티 팀은 또 다시 금메달을 다음 대회로 넘겨야 했다.

유제니오 몬티의 믿기 어려운 미담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자 여러 단체에서 그를 초청해 업적을 기리고자 했으나 그는 “나는 당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유네스코와 국제스포츠기자협회는 이듬해인 65년 5월 ‘쿠베르탱 페어플레이상’을 제정하고 1회 수상자로 유제니오 몬티를 선정했다. 몬티는 1968년 프랑스에서 열린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 또다시 출전해 기어이 ‘올림픽 금메달’의 숙원을 풀었다.

앞서 언급했었던 스키선수 핀란드의 니스카넨은 ‘쿠베르탱 페어플레이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한국의 쇼트트랙 간판스타 황대헌도 페어플레이를 했다.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황대헌은 지난 13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500m 준결승 2조 경기에서 세 바퀴까지 4위를 유지했다. 

황대헌은 마지막에 인코스를 파고들어 2위까지 올라갔으나 캐나다의 스티븐 뒤부아를 추월하려다 부딪히면서 뒤로 밀려났다.

황대헌은 레프리의 비디오 판독 이후 페널티를 받았고, 뒤부아에게 어드밴스를 줬다. 

그런데 대헌이 경기가 끝난 뒤 뒤부아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황대헌은 “캐나다 선수에게 사과를 했다. 시도도 안 해보고 머뭇거리고 주저하면서 끝내기보다 끝까지 추월을 시도하고 실패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레이스 펼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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