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입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펑리위안. (사진=뉴시스)
20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입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펑리위안. (사진=뉴시스)

[뉴시안= 기영노 편집위원 ]스포츠는 그 나라 대통령들의 관심, 그리고 정책 변화에 따라 활성화 되거나, 침체되곤 했었다. 지구촌의 현역, 역대 대통령(수상)들은 그동안 어떠한 스포츠 정책을 폈었고, 그래서 그 나라의 스포츠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았다.

<대통령들의 스포츠>는 지난 2021년 1년 동안 연재 된 이후 베이징올림픽으로 인해 2개월 동안 중단되었었다. 이제 중국의 시진핑을 시작으로 2022년 연재를 시작한다.

 

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 주석은 2월4일 개막식에선 어두운 옷에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했었다.

그러나 폐막식에선 중국의 국기와 같은 색인 붉은색의 마스크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시 주석이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이어서 페막식 에도 참석을 하면서 이번 올림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경우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히틀러였었다.

대회 개막 3년 전인 1936년 1월24일 독일공화국 총통으로 선출된 히틀러는 베를린올림픽을 이용해서 나치정책의 힘을 과시하고,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우려 했었다.

독일정부는 돈을 거의 무제한으로 지불해 최대 규모로 대회를 열어 나치 독일의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선전했다.

막강하고 효과적인 선전기구가 동원되었고, 국내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했다. 독일 국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역대 올림픽에서 볼 수 없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베를린 외곽에 방대한 규모의 선수촌이 건립되어 남자선수들을 투숙시켰고, 여자선수들은 베를린 시내의 호화로운 기숙사에 숙박했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직접 성화를 채화해서 봉송을 한 후 메인스타디움에 점화하기도 했다.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이 끝난 지 3년 만인 1939년 9월1일,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확인하기 위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폴란드를 침공한 루트가 바로 베를린 올림픽 성화봉송 루트였었다.

그 후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은 군사정권(전두환)의 홍보도구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푸틴 체제의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쓰여 졌었다.

지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시진핑의 3선(영구집권)에 방점을 찍기 위한 도구였었다고 볼 수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천안문광장에서 중국 선수단 결단식이 있었는데 중국 대표선수들은 ‘영수(시진핑)에 보답하기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을 다투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총서기(시진핑)와 함께 미래로 가자“고 외쳤다.

중국이 동계올림픽 종목 가운데 심판이 경기 결과에 개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종목인 남자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1000m에서 무리를 했던 것도 바로 금메달(성적)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좋은 성적(많은 금메달)이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쇼트트랙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는 등 무려 9개의 금메달과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로 종합 3위에 올랐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동계올림픽 한 대회에서 9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 중국이 처음이었고, 3위에 오른 것도 사상 최초였다.

한국은 2006년 토리노,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 6개를 딴 것이 최고성적이었고 순위는 평창 대회 때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5위를 차지한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일본은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때는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12위에 머물렀고,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 때도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로 7위에 그쳤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족의 우수성을 과시한 시진핑 주석은 올 하반기 3번째 임기에 오를 예정이다.

그동안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5년씩 두 번의 임기로 10년을 통치한 후에 후계자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 관례였었다.

덩샤오핑이 개인독재를 막기 위해 10년 임기를 규정한 것이었다. 장쩌민, 후진타오가 그 규정을 지키고 물러났었다.

지난 2012년에 주석 직에 오른 시진핑도 2017년 한번 연임했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8년, 헌법을 바꿔 ‘3연임 제한’ 규정을 없앴다. 사실상 장기집권을 향한 법적 장벽을 없애버린 것이다. 

지난 베이징올림픽은 ‘시진핑 황제시대’를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정치적 이벤트 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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