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김수찬 편집국장]2020년 1월 21일 하와이의 호놀룰루 시의회는 결의안 ‘20-7’호를 심의할 예정이었다. 캐럴 후쿠나가, 앤 고바야시 등 일본계 시 의원 등이 발의한 ‘2월 3일을 이승만 대통령의 날(President Syngman Rhee Day)로 선포한다’는 결의안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13년 호놀룰루에 정착한 2월 3일을 기념해 이날을 ‘이승만 대통령의 날’로 선포키로 한 것.

결의안은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에 있는 동안 한국 태평양 잡지를 발간하고, 한국 YMCA를 조직했으며, 한국 기독교회와 기독교 연구소를 설립하는 한편 일제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끊임없이 주장했고,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날’ 선포 취지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어 “이승만 박사가 1939년 워싱턴DC로 이주해 한국의 독립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면서 “1945년 독립 후 1948년 8월 15일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덧붙였다. 

결의안은 이승만 박사가 1960년 4월27일 대통령 직에서 내려온 뒤 하와이로 돌아와 1965년 7월19일 90세 때까지 살았다고 적었다. 4.19 의거를 적시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본국에서 임기 만료가 아닌 비정상적 절차로 '하야'한 뒤 하와이로 거처로 옮겼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호놀룰루 시의회는 결국 이 결의안을 철회해야만 했다. 당시 한국의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이 호놀룰루 의회에 결의안 철회 촉구 성명서를 제출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큐멘터리영화 ‘건국전쟁’에 출연한 일본계 호놀룰루 시 의원은 “한국 단체들의 반발 때문에 결국 결의안을 철회했다”며 “한국 내 이승만 박사에 대한 평가가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고 회상했다. “일부 한국 단체들이 싫어하는데 굳이 결의안을 강행해 한국 사회 내 갈등을 촉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집 근처 영화관을 찾아 ‘건국전쟁’을 관람했다. 100여석 좌석이 꽉 찼다. 부모 손에 이끌려온 초등학생들부터 노부부까지 가족나들이 관람객들이 대부분이었다. 100분 가량의 상영 시간 동안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진한 감동에 서너차례 눈물을 훔쳐야 했다.

주요 역사학자와 언론인 등의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로 영화적 임팩트나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10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눈을 뜨게 되는 흥미로움과 지적 호기심이 발동된 때문인 듯 싶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또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큰 박수를 보냈다. 영화의 진한 여운 때문인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관객들도 여럿 보였다. 

사실 필자도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시간에 ‘이승만’을 제대로 배워본 기억이 없다. 이승만하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독재자 이승만’ ‘이승만 괴뢰 정부’ ‘3.15부정선거’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전부였다. 아마 일부 세력의 ‘이승만 지우기’ 영향 탓일 게다. 

영화 건국전쟁은 일방적인 주의,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에 기반한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이승만’을 재조명했다. 3.15부정선거와 6.25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를 둘러싼 오해도 상당 부분 풀렸다. 토지개혁,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여성 참정권 보장 등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승만은 정말 많은 걸 이뤄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한쪽에 치우침없이 균형감있게 다뤄져야 한다. 영화 ‘건국전쟁’은 그 단초를 제공한 출발선에 불과하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개봉 10여일만에 40만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은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일본계 호놀룰루 시 의원들이 주축이 돼 항일, 반일운동에 앞장섰던 이승만을 기려 ‘이승만 대통령의 날’을 제정하려 한데 반해 정작 한국민들은 자신들이 그런 날을 제정하진 못할망정 외국인들의 노력에 되레 찬물을 끼얹는 우를 범했다. 필자는 지난 2020년 이승만 대통령의 날 제정에 반대했던 250여개 시민단체들에게 영화 ‘건국전쟁’을 꼭 한번 관람해보길 권한다. 당신들이 반대한 이승만이 정말 그 이승만인지 확인해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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