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전 빌딩(종로2가 40번지)은 건축주 이영길 대표(영동시티개발)가 2010년 6월 관할 종로구청에서 준공허가를 받았다. 준공 직전인 2010년 1월 '지상 9층 허가 시 박물관 수장고ㆍ사무실 등 박물관 부속시설로 쓸 것'이라며 문화재위원회에 증축 신청을 내 통과됐다.

그러나 이듬해 7월에는 '9층 대신, 지하 2층을 박물관 부속시설로 쓰겠다'며 종로구청에 용도변경허가를 다시 받았다. 그러면서 9층에는 학원을 입주시켰다. 준공허가부터 증축과 용도변경에 이르기까지 건축주에 유리하게 행정 당국의 '협조'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애초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 박물관 건립을 위한 종로구청의 배려도 있었다고 한다. 대지 구역이 사선형인 것을 감안해 건물의 구획정리도 신축에 맞게 지원했다고 한다. 건물을 지을 때 문화재나 유적 발견시 '개발자 부담'이라고는 하지만 증측과 구획정리까지 지원받았다면 '괜찮은 조건'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했다.

또 2010년 6월 준공승인이 난 이 빌딩 건축물대장에는 박물관이 들어올 지하 1층이 '상업시설' 용도로, 지하2층은 미장원 등의 임대용도로 기재됐다. 문제가 되자 다시 박물관 건립으로 바꾸는 헤프닝도 있었다. 이에 영동시티개발측은 "건축사 실수로 용도가 잘못 기재됐다"며 “고의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건축주 이 대표는 개발자 부담의 자금사정과 유구 보존업체, 전시업체를 핑계로 관할 종로구청과 문화재청에 박물관 개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박물관 건립은 2011년 6월부터 중단된채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4월 중순 "건축주가 의지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지난 4년간 육의전박물관 공동관장 겸 건립위원장을 맡아 문화재청과 종로구청에 박물관 건립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등 모든 일을 주도했다.

황 소장은 지난 5월 초 건축주와 다시 합의하여 5월 16일 공사를 재추진하고 늦어도 오는 9월경 개관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영동시티개발측도 본지와 통화에서 "모든 게 개관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건축주의 자금난 등으로 건립이 늦춰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제는 건축주가 이미 준공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박물관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단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상 매장문화재보호법 36조에 따르면, 건축주에 대해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을 뿐이다.

문화재청은 8월까지 박물관이 들어서지 않으면 건축주를 고발하고, 종로구청의 인허가 절차를 감사하도록 서울시에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건축주 이 대표는 탑골공원 옆 자신의 땅인 뉴파고다빌딩(종로2가39번지) 연결토지에 담장과 문을 달겠다는 현상변경을 신청했다. 행정기관은 그동안 '문화재구역이며 관습상 도로(종로17길)'라는 이유로 이씨가 '점용허가 신청'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이런 행정처분이 위법하다는 항소심 판결이 지난 2월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4단독 송혜정 판사는 지난 2월 "탑골공원 담장 중 일부가 사유지 위에 있다"며 "국가가 이 씨의 토지를 점유할 정당한 법률적 근거를 보유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재판부는 "사유지 지상 (탑골공원)담장을 철거하고 해당 토지를 소유자 이 씨에게 인도하라"고 했다.

이 대표가 현 도로 내에 담장을 친다면 한쪽 길목이 차단되고 우편물 화물차량과 소방차 등의 통행이 불가능해지는 모양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이씨의 현상변경 신청에 대해 종로구와 문화재청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보류를 되풀이해온 것이다. 

주변 관계자들은 "예전에는 분쟁이 없었는데, 이씨가 문화재라는 것을 알고 2004년 땅을 매입한 뒤 소송을 잇따라 내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문화재라는 걸 알면서도 이 씨가 부지를 매입한 뒤 사유권을 과도하게 행사하려고 한다'면서도 '문화재의 공공성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황 소장도 "지자체가 안일한 대처로 소송에서 논리를 세우지 못했고, 적절한 매입 시점을 놓치면서 소송 비용 등 비용만 키우고 있다"며 "국립공원관리구역 등에 묶인 사유재산 소유자들한테 끼치는 파장도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