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영노 평론가

[뉴시안 =기영노 뉴시안 자문위원] 지난 9월10일 일본의 타블로이드신문 '석간 후지'는 인터넷 판 뉴스에서 한국야구가 미야자키 선마린스타디움에서 열린 제 12회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결정짓자 마운드에 모여 얼싸안고 서로 물을 뿌리며 자축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라운드에 떨어진 빈 물병과 글러브를 치우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철수했다고 보도했었다.

석간 후지는 페트병과 글러브를 그라운드에 방치해 팬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분노 했고, 관계자들의 치우라는 요구에도 묵살을 당했다면서 벤치의 지도자가 주의를 했어야 했다고 썼다. 야구 지도자와 야구선수를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니까 야구 지도자가 야구선수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이다.

석간 후지의 기사는 사실 ‘야구기계’로 전락한 한국의 야구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는 뼈 있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 탈락 후, 라커룸 깨끗하게 치운 일본축구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사상 첫 월드컵 무대 8강을 노렸던 일본은 벨기에와 16강 경기에서 2골을 먼저 넣고도 2-3으로 역전패했다.

탈락 충격에도 일본은 '청소'로 세계축구 팬들을 감동 시켰다.

2골을 먼저 넣었지만 이후 내리 3골을 허용한 일본 축구, 더구나 2대2 상황에서 경기종료 직전에 역전 쐐기 골을 얻어맞아 눈물을 쏟은 일본 축구팬들은 그 와중에도 자신들이 앉았었던 좌석의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고 경기장을 떠났다.

그리고 일본 대표 팀의 라커룸 또한 말끔하게 청소된 상태였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채절 ESPN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일본 대표 팀이 쓴 라커룸에는 탁자 위에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Спасибо)'라는 메시지까지 남겨져있었다.

그 후 전 세계 여러 언론들은 "패배에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남겼다"며 일본 대표 팀과 일본 축구팬들을 칭찬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후에 일본축구대표 팀의 주장 하세베 마코토가 “선수들이 아니라 스태프들이 라커룸을 치운 것”이라고 정정했지만, 일본 팬들이 관람 후 쓰레기를 깨끗하게 치운 것에 대해 "(나 역시) 해외에서 뛰고 있지만, '일본만큼 거리가 깨끗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의 청결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세베 마코토는 “일본의 깨끗한 청결문화와 함께 일본 선수들의 주위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인성문제”도 포함되어 있는 뼈있는 말을 한 것이었다.

 

한국 스포츠, 스포츠 기계 양산(量産)

위의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의 학원스포츠는 공부(인성교육)는 무시 한 채 경기력만 향상 시키는 그러니까 ‘스포츠 기계’를 찍어 내 듯이 하고 있다.

한국의 학원스포츠는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육상, 야구, 축구, 농구 등 체육특기자로 키워지기 시작해서 성인이 될 때 까지 공부(인성교육)와는 담을 쌓게 된다.

한 때 모든 운동부 선수들이 ‘4교시 수업 후 오후부터 훈련’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오후 수업을 빼 먹으면 다음부터의 수업 진도를 따라 잡기 어렵고, 따라서 수업시간이 잠자는 시간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국가대표나 프로선수가 되지 못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주로 몸을 쓰는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학원 스포츠는 모든 학생이 방과 후 ‘일인일기(一人一技)’로 기량을 연마한다. 모든 학생이 수업을 다 받은, 방과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축구, 야구, 육상, 배구, 농구, 수영, 배드민턴, 스케이팅, 스키 등)가운데 하나를 골라 취미 활동을 하면서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과 스포츠의 가치를 배우고, 자신의 체력을 기른다.

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프로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발견하거나 자신이 그 종목에 미래를 걸겠다고 판단하면 실업이나 프로팀으로 진로를 결정한다. 만약 소질을 발견하지 못하면 공부를 계속 해 왔기 때문에 그대로 대학에 진학을 하거나 취직을 하면 된다.

대학이나 회사에 입사를 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의 취미활동은 계속된다. 일본의 ‘스포츠 인푸라’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이유다.

모든 학생들이 스포츠 꿈나무인 셈이니 스포츠 자원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생활체육으로 전환했다가 2000년 대 초부터 엘리트 스포츠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여년 만에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중국 등과 세계 정상을 다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풍부한 자원의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연관 관계가 긴밀했었기 때문이다.

 

혼혈 스포츠, 이대로 좋은가

일본의 스포츠는 전 국민이 즐기는 생활체육을 바탕으로 엘리트 스포츠가 발전되는 선순환(善循環)구조로 되어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근 일본과 다국적 인들의 2세들인 혼혈 선수들이 아시아 또는 세계무대 정상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겠지만 지극히 비인간적인 경우도 있어서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9월9일 일본의 여자 테니스 선수가 세계 스포츠를 깜짝 놀라게 했다.

9월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US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오사카 나오미가 통산 24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을 노렸던 미국의 서리나 윌리엄스를 불과 79분 만에 2-0(6:2/6:4)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나오미는 2011년 프랑스오픈과 2014년 호주오픈 여자단식을 제패한 중국의 리나 선수에 이어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 째 그랜드슬램대회 단식 챔피언이 됐다.

나오미는 아이티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 선수다.

나오미는 1997년 10월16일생으로 이제 만 21살이다. 키는 1m80으로 여자 선수치고는 장신에 속하고, 베이스라인에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스타일이다. 파워 넘치는 오른손 포핸드가 주특기고 양 손 백핸드도 수준급이다. 특히 서비스가 최고 200km까지 나와 남자 선수를 방불케 한다. 서리나 윌리엄스와의 대결에서도 강력한 서브로 제압을 해 나갔다.

나오미는 일본 국적으로 뛰지만 겉모습은 8~90퍼센트가 아이티 계통의 흑인이다.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홍보하는 일본 무용단(사진=뉴시스)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 홍보하는 일본 무용단(사진=뉴시스)

리우 올림픽 기적도 혼혈 선수가 주요멤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최대 화제는 9초대 선수가 한명도 없는 일본남자 육상이 9초대 선수가 즐비한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을 제치고 4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이었다.

일본 남자 400m 계주 팀은 2016년 8월20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37초60을 기록, 자메이카(37초27)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400m 계주에서 아시아 최초로 동메달을 딴 일본은 2016년 리우에서 더욱 더 빛나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육상 돌풍에도 혼혈 선수가 있었다. 바로 앵커를 맡은 아스카 켐브리지 선수다.

아스카 켐브리지 선수는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의 외모에서 알 수 있듯 혼혈 선수다. 일본인 어머니와 자메이카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사인 볼트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육상 강국 자메이카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다.

캠브리지는 180㎝, 77㎏의 탄탄한 체격을 갖고 있고 역시 겉모습의 90퍼센트는 자메이카 사람이다.

 

일본의 구기종목 혼혈 선수들

분데스리그 함부르크 SV에서 뛰고 있는 전 일본 축구 대표 팀의 사카이 고토쿠 선수는 어머니가 독일 사람이고 아버지가 일본인인 혼혈이고, 남자농구 대표 팀의 류이 하치무라 선수는 아버지가 가나 사람이고, 여자 농구 대표 팀의 우메자와 카데이샤는 아버지가 캐나다 출신이다.

그밖에 일본의 축구, 농구, 배구, 야구 등 구기종목에는 각 종목 마다 10명 안팎의 혼혈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혼혈 선수의 폐해는 일본 육상의 영웅 무로후지 시게노부와 무로후시 고지 부자(父子)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다.

 

무로후지 부자 세계제패, 전략적 결혼의 산물(産物)

일본 육상의 영웅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무로후시 고지 부자의 경우는 혼혈 스포츠의 폐해가 고스란히 나타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까지 남자 투해머 아시안게임을 5연패 했다.

그리고 아들 무로후시 고지는 1998년 방콕, 2002 부산 아시안게임 2연패를 해서 부자가 아시아 투해머에 7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 보다는 아들 무로후시 고지의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아버지는 아시아에서는 정상이었으나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단 한번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략결혼이었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육상에 소질이 있는 좋은 체격조건의 유럽여자와 결혼을 해서 2세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세계정상에 오르게 하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실행에 나갔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68년 유럽주니어 육상 선수권대회 여자 투창에서 금메달을 딴 루마니아의 세라피나 모리츠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과연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세라피나 모리츠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무로후시 고지는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무를 뛰어 넘었다.

무로후시 고지는 8할 이상이 어머니의 용모를 닮아서 거의 유럽인처럼 생겼다.

우선 일본 육상 선수권대회 투해머를 17연패해서 12연패의 아버지를 넘어섰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아버지의 한(限)을 풀어줬고,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81m24cm)을 따내 세계정상을 재확인했다.

무로후시 고지의 경우, 정략결혼에 의한 우수한 혼혈선수가 만들어졌다는 면에서 보통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인륜(人倫)을 거스른 행위가 아닌가하는 의문도 든다. 더구나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세라피나 모리츠의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하다가 무로후시 고지와 딸 유카(일본 투원반 선수)를 낳은 후 이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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