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김수찬 편집국장]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전 사장은 나의 페친이다. 고교 선배이기도 한 그는 주로 페북에 미술 관련 글을 많이 쓴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로선 그림에 대한 그의 넓고 깊은 식견에 그저 놀라고 또 놀랄 따름이다. 웬만한 미술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정 전 사장이 최근 페북에 미술 관련 아닌 글 하나를 포스팅했다. 한수원 퇴사 이후 한번도 업무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없다고 운을 뗀 그는 야당의 몇몇 의원님들 주도로 소형원자로 iSMR 관련 예산 전체가 삭감됐다민주당이 통찰과 미래 대응능력 결단으로 예산삭감을 철회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간곡함으로 글을 맺었다.

그는 소형원자로 정책은 2020(문재인 정부시절) 정세균 총리 때 정부정책으로 확정돼 여야 합의로 예타까지 통과돼 올해부터 예산이 지원됐다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소형원자로 예산을 삭감하기 보다는 좀 더 구체화해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지금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소형원자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관련 배임 등의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그가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민감한 시기 페북에 이런 글을 올린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행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답답함 때문이었을거다.

내년 정부 예산안 국회 심의과정에서 168석을 앞세운 민주당이 몽니를 부리는 것은 이뿐 아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새로 편성한 청년취업진로 및 일경험지원 예산 2382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민주당은 대신 자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관련한 예산은 비목을 설치해 증액했다. 지역화폐 발행 예산(7053억원)과 신재생에너지 지원(4501억원) 예산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엉터리예산을 바로잡겠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지만, 예산 심사권이 아니라 아예 예산 편성권을 쥐고 흔드는 모양새이다. 국회의원의 의무를 정한 헌법 57조는 '정부 동의없이 예산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 전체 16개 상임위원회 중 절반인 8개 상임위가 국민의힘과 합의없이 민주당 단독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렇듯 내년 예산만 두고 보면, 지금이 민주당 정부인지 국민의힘 정부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왜 정권을 빼앗겼는 지를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한다. 많은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데는 원전 부동산 등 다수의 정책 실패가 큰 몫을 했다. 지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의 궤도를 수정하기위한 내년도 정부예산을 마구 주무르면서 민주당 정부 시즌2’를 열겠다고 한다면 국민들이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민주당의 행태를 두고 일각에선 철저한 자기반성없이 거대 의석수만 앞세운 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거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야당 역할을 넘어 아예 국회에 따로 이재명 정부를 차리겠다는 대선불복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말로는 민생을 외치며 행동으론 특검과 탄핵을 강행하는 모순에 자기반성이 없으니 정치의 목표는 오로지 민생이라는 얘기가 공허하게 들린다"고 꼬집었다.

여당은 그렇다치더라도,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쓴소리가 나온다. 이낙연 전 대표는 최근 한 포럼에서 우리 정치가 제가 부족했다는 이야기를 먼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자기반성없는 민주당을 겨냥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가 안나오고 있다그럼 뭘 기반으로 당은 준비하나.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이제 이낙연 전 대표의 쓴소리에 귀기울이고 정재훈 전 사장의 답답함을 풀어주기 위해 정부 예산안 심사 때 더 이상의 몽니를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패배의 의미를 곱씹고 윤석열 정부에도 기회를 한번 줘보는 건 어떤가. 내일(2)이 국회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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