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구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강구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 이태영 기자]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세대 간 형평성을 유지하기 하기 위해 미래세대가 납부한 보험료와 운용수익 만큼의 연금을 기금 고갈 우려 없이 지급할 것을 보장하는 완전적립식 '신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21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이강구·신승룡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 보고서를 통해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기금 고갈의 위험 없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연금개혁 시행 전후로 연금 급여 충당 방식을 달리해 미래 세대의 불안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 연금개혁 이전에 납입된 보험료에 대해서는 기존의 확정급여형으로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되, 이로 인해 발생할 ‘구연금’의 재정부족분은 ‘신연금’과 분리해 일반재정으로 충당하는 해결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 국민연금 구조개혁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1월 도입됐다. 재정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점진적으로 40%까지 인하하고, 보험료율은 9%로 인상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해왔으나 국민연금의 심각한 재정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로는 적립기금은 2023년 1015조원(GDP의 44.8%)에서 2039년 최대 규모인 1972조원에 도달한 이후 점차 감소해 2054년에는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연금제도는 기금 소진 후에도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 보험료율을 우선해 조정하도록 설계돼 있다.

보고서는 “보험료율 조정만으로 약속된 연금 급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OECD에서 최고 공적연금 보험료율 수준인 33%(이탈리아)를 능가하는 35% 내외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 제도하에서는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2054년경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며, 기금 소진 후 인상될 보험료율은 미래 세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

[그래픽=한국개발연구원]
[그래픽=한국개발연구원]

특히 “구조개혁 없이 모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기금 소진 시점을 이연시키는 과정에서도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인 청년층의 보험료로 다수의 노령층을 부양하는 형태의 현 연금제도 구조하에서는 모수를 어떻게 조정하더라도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KDI 이강구 연구위원은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모수조정 뿐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의 구조개혁이 반드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기대수익비 1’ 신연금 제도 도입방안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에서 이와 같은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큰 것에 기인한다.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와 이를 적립한 기금의 기대 운용수익의 합에 비해 사망 시까지 받을 것으로 약속된 총급여액이 훨씬 더 많다는 것.

만약 이러한 앞 세대의 급여액 초과분을 현행처럼 뒷세대의 적립기금 및 기대운용수익으로 충당하게 될 경우 뒷세대에게 예정된 기대수익비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지고, 연금 기금 소진 시부터는 기대수익비 1조차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확정된다. 보고서는 앞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을 상회한다는 것은 뒷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을 하회하며 장기적인 기대수익비가 1을 넘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장기적인 ‘기대수익비’의 최대치는 1이며, 합계출산율이 매우 낮아져서 기대수익비를 1 부근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연금개혁 방안을 제안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기금이 적립되다가 소진되면 부과식으로 전환되는 형태이므로 ‘부분적립식’이다”며 “‘기대수익비 1’로 약정돼 있는 기존의 연금 구조에 대한 부담과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할 때, 사실상 현재의 부분적립식 연금제도가 부과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2050년대 중반까지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5000조원을 상회할 정도로 크게 증가하나, 2080년경에는 결국 전체 적립금이 소진될 것으로 추산된다.

보고서는 매우 낮은 합계출산율하에서도 미래 세대에게 기대수익비 1을 보장하기 위해 완전적립식의 ‘신연금’ 도입을 제안했다. 개혁 시점부터 납입되는 모든 보험료는 신연금의 연금기금으로 적립되고 이에 따라 향후 기대수익비 1의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개혁 시점 이전에 납입한 보험료에 대해서는 ‘구연금’ 계정으로 분리하되, 구연금에 대해서는 개혁 이전의 기대수익비 1 이상의 급여 산식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게 된다.

[그래픽=한국개발연구원]
[그래픽=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는 “구연금의 적립기금으로 향후 연금급여 총액을 충당하지 못해 재정부족분(미적립 충당금)이 발생한다”며 “구연금의 재정부족분에 대해 신연금과 분리해 일반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미래 세대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대수익비 1’의 완전적립식 ‘신연금’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개혁 지체될수록 재정부족분 급격하게 증가

보고서는 “기대수익비 1을 목표로 하는 신연금을 도입할 경우 연금재정은 항구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운용된 구연금 제도에서 발생한 미적립 충당금을 일반재정이 부담할 것을 보장한다면, 신연금 보험료율을 15.5% 내외까지만 인상해도 40%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구연금의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시점인 2046년경부터 약 13년간 GDP의 1~2% 수준의 재정부담이 예상되며, 그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축소돼 2080년경 이후에는 거의 사라질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신연금의 도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609조원(GDP의 26.9%) 내외로 추정되는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을 일반재정이 보장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구연금 기금이 소진되기 이전부터 일정 수준의 재정투입이 이루어지는 개혁안을 함께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KDI 이강구 연구위원은 “개혁이 지체될수록 재정부족분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연금개혁이 2024년보다 5년 후인 2029년에 단행될 경우 재정부족분은 609조원이 아니라 869조원(GDP의 38.4%)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추계된다”며 “재정부족분 규모가 커질수록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혁을 지체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

완전적립식의 신연금 도입 개혁이 5년 지체될 경우, 일반재정이 부담해야 할 미적립 충당금은 260조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도 우려했다.

이강구 연구위원은 “신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적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향후 신연금에서 발생하는 연금 급여에 대해서는 소득세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제공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며 “부족한 연금기금에 대한 일반재정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개혁이 가급적 조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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