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도로정책 Brief+’에 게재된 ‘지하도로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 지하도로 사업들은 주로 교통 혼잡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되고 있다”며 “지역 특성을 고려한 상부공간 활용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콜로라도 코버 파크 전경 [자료=국토연구원/CDOT, https://www.codot.gov/projects/i70east/resources/cover_park]
국토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도로정책 Brief+’에 게재된 ‘지하도로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 지하도로 사업들은 주로 교통 혼잡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되고 있다”며 “지역 특성을 고려한 상부공간 활용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콜로라도 코버 파크 전경 [자료=국토연구원/CDOT, https://www.codot.gov/projects/i70east/resources/cover_park]

[뉴시안= 이태영 기자]대도시권 인구 밀집 심화로 국내 지하도로의 필요성과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지하도로가 단순히 하나의 교통시설이 아닌 활용도 높은 공공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특히 사업의 계획 단계부터 건설 단계까지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참여형 의사결정체계 구성 필요성도 강조됐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도로정책 Brief+’에 게재된 ‘지하도로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 지하도로 사업들은 주로 교통 혼잡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되고 있다”며 “지역 특성을 고려한 상부공간 활용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싱가포르 NSC 지하도로와 지상부의 모습 [투시도=국토연구원/https:www.lta.gov.sg]
싱가포르 NSC 지하도로와 지상부의 모습 [투시도=국토연구원/https:www.lta.gov.sg]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도시화와 교외화 현상으로 인해 도시의 자동차 수요는 꾸준히 증가, 교통시설 포화, 도시 내 토지가격 상승으로 인해 도로의 수평적 확장은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보고서는 “최근 국내·외 주요 도시에서는 지하공간을 교통시설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이 중 지하도로는 지상도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확보된 상부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주목했다.

해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주요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지하도로 건설이 활발히 추진·운영 중에 있다. 국내의 경우 ‘제2차 고속도로 건설계획(2021~2025)’을 기점으로 다양한 지하도로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국토연구원 김민준 부연구위원은 “현재까지의 국내 지하도로 사업은 건설 공법이나 운영 방안 등 주로 기술적인 측면에 치중돼, 상부공간 활용, 지역 단절 완화를 포함한 지하도로가 가진 차별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짚었다.

미국, 프랑스, 일본, 호주 등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하도로 사업을 활발히 추진해 오고 있다. 초기의 해외 지하도로 사업은 도로 용량 확장을 통한 정체 완화가 주된 목적이었다.

[그래픽=국토연구원]
[그래픽=국토연구원]

보고서는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지하도로로 불리는 미국 보스턴 ‘Big Dig’을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Big Dig’은 보스턴 시내를 관통하는 Central Artery의 교통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1982년에 계획돼 2003년에 개통한 지하 고속도로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간 고속도로 사업이다. 공사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개통 이후 보스턴 외곽과 도심 간 차량 통행시간이 62% 가량 감소해 연간 약 2000억원 이상의 혼잡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M30’(2007년 개통), 싱가포르의 ‘KPE’(2008년 개통), 프랑스 파리의 ‘A86’(2011년 개통)을 포함한 여러 초기 지하도로 사업 또한 계획 단계부터 교통 정체 해소에 초점을 맞췄고, 실제 유의미한 혼잡 개선 효과로 이어졌다. 다만, 초기 지하도로 사업에서는 상부공간 활용에 대한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대부분 상부공간에 일괄적으로 공원이나 녹지 등을 조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민준 부연구위원은 “최근의 해외 지하도로 사업의 목적 및 패러다임은 더욱 다각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전히 교통정체 완화가 주된 사업 목적 중 하나이긴 하지만, 상부 개발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초기 지하도로 사업들과 차별화될 수 있다는 것.

보고서는 대표적인 예로 미국 시애틀의 ‘Alaskan Way’을 꼽았다. 지하도로 사업이 시애틀 도시 정비를 위한 ‘워터프론트 시애틀’ 프로젝트에 포함돼 보행 친화공간, 상업시설 조성 등의 타 사업들과 연계될 수 있도록 계획한 점을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에 추진된 미국 덴버의 ‘Central 70’(2023년 개통)와 스웨덴 스톡홀름의 ‘E4 bypass’(2023년 개통) 프로젝트 또한 지하도로 사업이 혼잡 개선과 같은 직접 효과 외에도 상부공간의 다양한 활용을 통해 지역 간 단절 해소, 보행 편의성 향상, 생태계 복원 등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들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김민준 부연구위원은 “현재 건설 또는 계획 중인 해외 지하도로 사업의 주요 특징은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주민 참여형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중시했다.

[도표=국토연구원]
[도표=국토연구원]

싱가포르의 ‘North-South Corridor’(2027년 개통 예정)의 경우, 계획 과정에서부터 지하도로가 지나는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 및 워크숍 기회를 주기적으로 마련했다. 그 결과, ‘North-South Corridor’의 상부공간 개발은 각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녹지, 교통시설(자전거 도로 등), 상업 공간 등으로 세분화해 추진될 수 있었다.

호주 시드니의 ‘WestConnex’(2023년 개통)와 인도 뭄바이의 ‘Mumbai Trans Harbour Sea Link(MTHL)’(계획 중)도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의견을 우선시하는 상향식(Bottom-up) 의사결정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하도로 개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 특성에 맞는 상부공간을 구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의 지하도로 사업은 초기 교통정체 해소를 주목적으로 추진되던 게, 점차 상부공간의 활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현재 국내에서 추진 또는 계획 중인 지하도로 사업은 주로 대도시권과 인근 주요 거점들을 잇는 구간에 집중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 ‘제2차 고속도로 건설계획(2021~2025)’을 통해 경부고속도로(서울 한남~화성 동탄),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경기 퇴계원~성남 판교), 경인고속도로(인천 남청라~서울 신월) 등을 지하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인천, 부산 등 주요 대도시에서도 혼잡 구간을 중심으로 향후 지하도로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더 이상 수평적 확장이 어려운 혼잡 구간을 중심으로 지하화를 추진하며 상부공간에는 선형 녹지인 ‘서울 리니어 파크’를 조성할 계획에 있다. 경인고속도로 또한 고속도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교통 체증이 심각한 청라-신월 간 19.3km 구간을 지하화하고 상부공간은 공원화할 목표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를 포함한 일부 지하도로 사업에서 상부공간을 대중교통 서비스 확대, 보행 공간 등으로 개발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지역 특성을 고려한 상부공간 개발의 중요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

김민준 부연구위원은 “향후 대도시권 인구 밀집 현상이 심화함에 따라, 국내 지하도로의 필요성과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외 사례로 비추어 보았을 때,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국내 지하도로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 지하도로가 단순히 하나의 교통시설이 아닌, 활용도 높은 공공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도로를 지하화하는 것이, 곧 도시재생과 일목상통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주목된다.

한국도로학회가 지난 6일 개최한 ‘새로운 지하도로와 새로운 미래도로 무엇이 필요한가’ 세미나에서 박호철 명지대 교수는 “도로지하화의 경우 상부구간은 신도심으로 사용이 가능하고 도로로 인해 발생했던 도심간 단절 및 환경오염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도로지하화가 도시재생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교수는 "도로 지하화 이후 관련 지역에 대한 상권개발, 환승센터로 인한 도심개발 등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 도로 지하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관련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 또한 인식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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