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마라톤이 열릴 일본 삿포로에서 훈련중인 오주한. (사진=무타이 코치 제공)

 2018년 케냐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검은 황영조’ 오주한(33·케냐명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청양군청)이 자신을 10여 년간 지도해온 한국인 아버지이자 전 한국남자마라톤 코치였던 오창석 백석대 교수의 영전에 영광의 메달을 바칠 수 있을까? 8일 오전 7시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이룩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광을 29년 만에 재현해야하는 부담도 안고 있는 그가 이를 악물었다. 케냐 북부 메마르고 무더운 사막지역 트루카나에서 맨발로 맨땅을 달리던 흑인 청년 오주한. 그가 약물복용 의혹과 귀화의 어려움, 귀화선수의 출전 제한 등 역경을 딛고 마침내 ‘마라톤 한국’의 선봉에 섰다. 지난해 1월부터 케냐 엘도렛 해발 2천m의 고지 캅타갓의 훈련 캠프에서 1년 7개월간의 강훈에 전념한 오주한이 출격 준비를 끝냈다. 

 백석대 오창석교수와 운명의 만남…한국 귀화추진


 1988년생인 오주한이 마라톤에 입문한 것은 20살 때인 2008년. 고향에서 홀어머니, 누나, 형과 함께 소와 양을 치던 그가 3년의 훈련 끝에 2011년 8월 케냐 뭄바사 마라톤에 나가 우승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케냐선수의 대리인으로 활약하던 오창석교수를 ‘운명’처럼 만난 것. 마라톤 선수출신으로 국군체육부대에서 국가대표 김이용 등을 지도했던 오교수는 오주한을 두 달 뒤 경주 동아국제마라톤에서 우승시켰다. 오주한은 다음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과 10월 경주 동아국제마라톤에서도 거푸 정상에 올라 세계랭킹 10위권의 마라톤 스타로 떠올랐다.

 이때만 해도 잘 나가던 오주한은 아버지처럼 따르던 오교수에게 한국 귀화를 부탁했고 이를 추진하던 중 말라리아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았다가 반도핑기구(WADA)의 약물 복용 수시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았다. 2년간의 출전정지 처분은 그에게 첫 번째 난관이었다. 약물 복용 의혹에도 그는 훈련에 정진, 2년여의 공백을 딛고 2015년 3월, 2시간6분11초의 좋은 기록으로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재기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약물을 상습 복용했다면 도저히 세울 수 없는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2016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5분13초의 대회최고기록으로 우승, 다시 한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기록은 그해 세계랭킹 8위의 대기록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귀화해 리우 하계올림픽에 나가려는 그의 꿈은 끝내 좌절됐다. 여론조사결과 74대26으로 귀화 찬성이 절대 우세였으나 검은 피부와 약물 복용 전력을 물고 늘어지는 일부 체육인들의 반대가 거셌다. 두 번째 난관이었다. 

8일 오전7시 청양군청이 개최할 오주한 우승기원 군민 합동 응원 행사 포스터(사진=청양군)

 2018년 귀화 성공…2019년 도쿄올림픽 참가 확정

 2018년 7월. 오주한의 특별귀화는 갑론을박 끝에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7대6으로 통과해 법무부의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발목을 잡았다. 귀화 후 1년이 지나야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는 규정을 3년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2021년 이후에나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 2020년 도쿄올림픽에는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세 번째 난관이었다. 이에 대한육상연맹은 오주한이 2015년부터 청양군청으로부터 받은 급여 명세서 등 관련 서류를 IAAF에 보내 이의를 제기했고 IAAF가 이를 받아들여 오주한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긴 오주한은 2019년 10월 경주국제마라톤에서 2시간08분42초로 올림픽 참가 기준기록(2시간11분30초)을 가볍게 통과, 대학 휴직계를 내고 케냐 훈련장에 합류한 오교수와 함께 도쿄올림픽을 준비했다.

(왼쪽부터) 무타이 코치, 오주한 선수, 민진홍 선수. 

 케냐 캠프에서 강훈 소화…지난5월 오 교수 별세 충격 

 캅타갓 훈련 캠프에는 남자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인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37)를 비롯 이탈리아의 로사 군단, 네덜란드의 호스 군단 등 세계적인 7개 마라톤 팀들이 올림픽 우승과 세계기록 경신을 위해 연중 훈련을 하고 있다. 2시간5분13초의 개인기록을 보유한 오주한은 이들과 함께 도쿄올림픽 대비 훈련을 계획대로 소화해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올림픽이 1년 연기됐고 지난 5월에는 아버지처럼 따랐던 오창석 교수가 지난 5월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의심되는 증세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2015년부터 오교수의 주선으로 청양군청 육상단에 입단, 연봉 8000만 원을 받아온 오주한은 도쿄올림픽 마라톤 입상여부와 관계없이 오는 10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 자가격리후 청양에 머물며 오교수 묘소 참배 등을 할 예정이다. 

2019년 10월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 국가대표가 확정된 오주한이 서울 만리동 손기정 기념관을 찾아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골인 사진 앞에서 주먹을 불끈쥐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故 오창석 교수 제공)

8월10일 인천공항 귀국…오 교수 묘소 참배

지난 7월 29일 케냐를 떠나 30일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서 1박한 오주한은 31일 삿포로에 입성, 폭염을 피해 오전 10시와 오후 4시30분 하루 2차례 가벼운 달리기로 마지막 컨디션 조절을 하며 결전의 날을 기다려왔다. 
별세한 오교수에 이어 남자마라톤 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은 김재룡(55)한국전력 마라톤팀 감독은“오주한이 한국인 아버지인 오교수에게 보답하는 길은 도쿄올림픽 입상이라는 각오아래 열심히 훈련해왔다”며 “무더위에 강한 오주한이 그의 특기인 30km지점 이후 종반 스퍼트로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한은 도쿄올림픽 마라톤 레이스를 위해 스피드보다는 스퍼트 향상에 유리한 파란색 나이키 CU4111-300 운동화를 7월 말 구입해 적응중이다. 

한편 오주한이 소속한 청양군청(군수 김돈곤)은 8일 오전7시 청양문예회관에서 오주한 우승기원 군민 합동 응원전을 펼칠 계획이다.

2019년10월 서울 강남 음식점에서 필자(왼쪽)와 함께한 오주한(가운데) 무타이 코치(고 오창석 교수제공)
2019년10월 서울 강남 음식점에서 필자(왼쪽)와 함께한 오주한(가운데) 무타이 코치(고 오창석 교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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