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전문가 칼럼=기영노 평론가]

지난 11월말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이하 IOC) 위원장이 유럽의 올림픽 관계자들을 만나 “러시아의 2018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에 영향을 끼치려는 어떠한 외부 압력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바흐는 러시아의 반발이 계속되거나 지나칠 경우 그대로 좌시하지 않고, 심지어 2020 도쿄올림픽 출전까지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선수들의 소변을 바꿔치고, 혈액을 조작하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도핑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IOC 산하 세계반도핑기구 즉 WADA는 러시아의 조직적인 약물투여 혐의를 잡고 혈액조사 결과를 토대로 19명을 올림픽에서 영구제명 시켰다.

그 가운데는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크로스컨트리 50km의 레그코프, 남자 스켈레톤의 트레티아코프, 봅슬레이 2인승, 4인승 2관왕 알렉산드로 줍코프 러시아 봅슬레이 스켈레톤 회장 등의 금메달 4개가 포함됐다.

이제 러시아는 소치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 4개 등 모두 9개의 메달을 박탈당해 최종 확정이 되면 종합 1위(금메달 13개)에서 종합 4위(금메달 9개)로 전락하게 된다.

IOC는 12월6일부터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어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에 대한 WADA의 건의를 심의한다.

IOC의 결정은 3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러시아 선수단의 출전을 전면금지 시키는 것.

두 번째는 지난 2016 리우올림픽처럼 특정종목, 그러니까 약물을 복용한 스켈레톤, 스키 등의 종목만 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리우 때는 종목별 단체연맹에 맡긴 결과 육상, 역도 2종목에서만 출전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앞으로 러시아가 (국가적으로 조직적인)약물복용을 하지 않도록 약속을 받아내면서 평창 올림픽 출전을 허락하는 것.
 
▲ 러시아의 운명 12월6일 결정돼
 
그런데 IOC가 첫 번째 즉 ‘러시아의 모든 종목 출전금지’ 쪽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복심인 드미트리 체르니센코 러시아대륙 간 아이스하키리그 (이하 KHL) 회장이 반발하고 나섰다.

체르니센코 회장은 “우리가 (평창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면 올림픽 방송 중계도 하지 않겠다”고 맞섰고, 최근에는 세계 2위 아이스하키리그인 러시아 대륙 간 아이스하키리그(KHL)의 평창동계올림픽 불참 카드를 꺼내들었다.

평창 올림픽은 이미 세계최대의 아이스하키리그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불참을 선언한데 이어 만약 KHL까지 출전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대학아이스하키리그 수준으로 전락돼서 흥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 푸틴의 복심 체르니센코
 
푸틴 즉 체르니센코 회장의 으름장 및 협박에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어떠한 외부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가 이같이 코너에 몰리게 된 이유는 푸틴의 ‘강한 러시아’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07년 7월, 러시아(소치)는 강력한 개최후보 평창에 역전승을 거두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짓는 IOC 총회가 열렸던 과테말라에는 라이벌(한국의 노무현, 러시아의 푸틴)국가의 대통령이 직접 현장까지 와서 진두지휘했다.

1차 투표에서는 평창(36)이 소치(34)를 2표차이로 앞섰지만, 1,2위 국가만이 나선 결선투표에서 25표에 그친 잘츠부르크 표가 대거 소치 쪽으로 기우러져 소치가 평창에 오히려 4표 앞서(51대47) 개최권을 획득했다.

소치가 평창에 승리를 거둔 후 과테말라 현지에서는 한국은 500만 달러, 러시아는 10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풀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소치가 개최권을 따낸 지 3년 만에 치러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는 금메달 3개로 종합 11위에 그치고 말았다.

푸틴은 홈에서 열리는 소치올림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최국 러시아의 좋은 성적이 필요하다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량의 금메달을 따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 소치 1위는 귀화와 약물복용으로
 
러시아는 소치올림픽에서의 종합 1위를 위해 ‘귀화’와 ‘약물복용’이라는 두개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귀화 선수에는 한국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안현수(금메달 3개)와 미국의 스노보드 선수 빅 와일드(금메달 2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러시아는 소치올림픽에서 안현수의 3개, 빅 와일드의 2개 등 귀화 선수가 따낸 6.5개의 금메달과 자국 선수가 획득한 6.5개의 금메달을 합해 모두 13개의 금메달로 러시아의 이름으로는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종합 1위에 올랐다.(러시아는 페어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러시아의 막심 트란코프와 호흡을 맞춘 타티야나 볼로소자르는 2010년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귀화한 선수다. 그래서 페어 금메달의 절반(0.5)은 귀화 선수, 절반(0.5)은 러시아의 몫인 셈이다)

당시 러시아가 귀화 선수들 때문에 대량의 금메달을 따자 외신들은 '레종 에트랑제(Legion Etrngere)'라고 표현했다.

레종 에트랑제는 외국인들의 지원으로 구성되는 프랑스 정규 외인부대로, 프랑스 국민 대신 세계 분쟁 지역에 투입된다. AFP통신은 '귀화한 뒤 러시아에 메달을 안긴 선수들을 레종 에트랑제 부대원의 의미를 지닌 레지오네리(Legionari)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을 치른 지 4년이 채 지나지 않아 국가적인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약물을 복용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치명타를 입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범국가적으로 조직적인 도핑을 한 사실은 내부자 고발 즉 소치 올림픽 당시 반도핑 실험실 국장 그리고리 로드첸코프가 양심고백을 함으로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 산하 조사위원회(IC)는 “로드첸코프가 직접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제공 했고, 선수들은 그가 건넨 약물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며 로프첸코의 개인비리로 몰고 가고 있다.

푸틴 대동령도 “모든 혐의가 추악한 명성을 지닌 한 남자(로드첸코프)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까지 나서서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을 로드첸코프의 개인적인 일로 몰아가자 미국의 뉴욕 타임즈가 지난 11월29일 새로운 증거를 내놓았다.

로드첸코프가 도핑기록을 상세하게 정리한 일기를 공개한 것이다.

러시아 반도핑기구(RUSADA) 산하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으로 일했던 로드첸코프는 2016년 1월 모스크바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미국으로 망명을 한 뒤 자신이 어떻게 도핑을 도왔는지 폭로하기 시작했었다.

러시아 스포츠 운명을 좌우할 12월6일 IOC 집행위원회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내 놓을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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