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및 산업 성장 방안 정책 발표 행사에서 소아당뇨 학생인 정소명군의 어머니 김미영씨의 환자대표 사례를 듣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및 산업 성장 방안 정책 발표 행사에서 소아당뇨 학생인 정소명군의 어머니 김미영씨의 환자대표 사례를 듣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신민주 기자] 정부가 의료기기 규제 혁신 방안을 깜짝 발표하면서 그동안 이해 당사자 간의 의견 차이로 지지부진했던 첨단의료기술 시장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지난 19일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하며 규제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복지부 장관, 심평원장, 보험급여과장, 보건산업 진흥원장 등이 함께했다. 

첨단 의료기기 ‘선허용 후평가’ 방식 도입

이날 발표한 정부 규제혁신 방안의 첫 대상은 의료기기. 특히 의료기기 인·허가 제도를 '선(先) 허용 후(後) 평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의료기술도 최소한의 안전성만 검토해 시장진입을 허용한 뒤  3~5년간 임상 현장에서 축적된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하는 하는 방식이다. 이는 미국 FDA에서 도입한 방식이기도 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 걸음 나아가 첨단 의료기술을 대표하는 '원격의료'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의사를 밝혔다.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난 박 장관은 "전 세계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의료기술 물결을 타지 않으면 세계 정상급 수준인 (한국의)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정상을 지키기 힘들 것"이라며 원격의료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전부 개방하는 게 아니라 초기에는 대면 진료를 하고 정기적인 의료 관리 시스템에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원격의료도 허용, 일자리 창출 기대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하다 의료계 반발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발이 묶였던 원격의료도 힘을 받게 됐다.

우리나라는 2002년 3월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인-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도입했으나 의료인-환자간 원격의료는 제한해왔다.

노인, 도서벽지 주민, 전방 GP 등 격오지 부대 장병, 원양선박 선원, 교정시설 수용자 등 의료 서비스를 잘 받을 수 없는 대상에 한해 시범사업을 진행해 오는 선이었다.

의료인-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제18대와 제19대 국회에서 무산된 데 이어 제20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다.

경제·산업계는 의료산업 부가가치 창출 등을 이유로 정부에 원격의료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18만7000~37만4000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며 영리병원 설립과 함께 원격의료 규제 개선을 건의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10대 규제'중 하나로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을 제안했다.

원격의료가 활성화하면 통신설비와 영상장비 등 첨단 의료기기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을 이용할 경우 통신업체도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기기협회는 "지속적인 의료기기 규제 개선을 위한 정부의 소통 노력과 실제적인 규제 혁신안에 감사하며, 의료기기산업 진흥에 대한 정부 의지에 고무됐다"며 "업계 숙원이었던 의료기기의 '선 시장 진입 이후 평가'라는 신의료기술 평가 방식의 방향 전환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 심화될 우려도

그동안 시민단체와 의료계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지고 의료 영리화 등을 우려해 병원 대 병원 간의 원격의료는 용인할 뜻을 비추면서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에 대서는 강하게 반대해왔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에선 첨단 의료기기 등의 인프라를 갖춘 대형병원에 환자가 더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도입 초기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하더라도 사업이 확대되면 대형병원 수요가 늘어날 거란 걱정이다. 의협은 박 장관 발언 직후 복지부에 진의 파악을 위한 질의서를 보낸 상태다.

보건의료·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무상의료국민연대는 지난달 "원격의료와 영리병원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 영리화 사안"이라며 "보건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는 공공의료 확충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대폭적인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원격의료에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일자리 창출과 첨단 의료 기술 확보라는 차원에서 원격의료 등 의료 규제를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회적으로도 도입에 대한 개연성이 확대되면서 이번에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원격진료든 대면진료든 의료인들이 하는 문제이니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선 절대 안 된다"며 "의료인들과 충분히 상의해 그분들이 납득하고 스스로 동참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가면 반대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첨단 의료기기가 신속하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그동안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심평원 등에서도 규제 완화 쪽으로 나아갈 것인데, 의료수가가 어떻게 책정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첨단 기기가 보험 급여로 포함될지 비급여로 진행될지, 그리고 문재인 케어와 어떻게 융합될지 구체적인 사안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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