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통화옵션계약(키코) 관련 금융분쟁조정위원회 개최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통화옵션계약(키코) 관련 금융분쟁조정위원회 개최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김기율 기자]금융당국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태와 관련해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인정했다. 계약 체결 당시 은행들이 위험성이 큰 장외파생상품을 팔면서도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판단이다.

13일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키코 사태 피해기업 4곳의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조정결정을 내렸다. 이번 분쟁조정 대상인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기업의 피해금액은 1500억 원에 달한다.

분조위는 은행의 고객보호의무 위반 정도와 피해기업이 투자 위험성 등을 스스로 살폈어야 할 자기책임원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분조위는 “판매은행들은 4개 기업과 키코 계약 체결 시,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다른 은행의 환 헤지 계약을 감안하지 않고 과도한 규모의 환 헤지를 권유했다”며 적합성 원칙 위반을 인정했다.

또 “이에 따른 오버헤지로 환율 상승 시 향후 예상되는 위험성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설명의무 위반도 인정했다.

분조위에 따르면 판매 은행들은 상품안내장과 위험고지서에 레버리지·오버헤지의 위험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이익측면만 부각했다. 레버리지는 수익 증대를 위해 부채를 끌어다가 자산을 매입하는 경우를, 오버헤지는 이익을 목적으로 필요한 계약 이상의 계약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분조위는 기본배상비율을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적용되는 30%로 하고, 키코 계약의 개별 사정을 고려해 가감 조정한 후 최종 배상비율을 산정했다.

배상책임 가중사유는 주거래은행으로서 외환 유입규모 등을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경우, 계약기간(만기)를 과도하게 장기로 설정해 리스크를 증대시킨 경우 등이다. 반면 기업의 규모가 큰 경우, 파생상품 거래경험이 많은 경우, 장기간 수출업무를 진행해 환율 변동성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경우 등은 경감사유로 분류됐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 원, 우리은행 42억 원, KDB산업은행 28억 원, KEB하나은행 18억 원, 대구은행 11억 원, 시티은행 6억 원 순으로 결정됐다.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앞서 지난 2013년 대법원은 기업들이 키코 계약과 관련해 제기한 불공정성과 사기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도 이번 조정에서 대법 판례에서 인정된 불완전판매 책임에 대해서만 심의하고, 계약자체의 불공정성과 사기성이 있는지는 살펴보지 않았다.

다만 금감원은 “대법 판결로 불완전판매 판단기준이 제시됐음에도 은행과 금융당국 모두 피해구제 노력이 미흡했고 소멸시효가 완성된 건이라도 임의변제가 가능한 점 등을 감안했다”며 “장기간 지속된 사회적 갈등 종결을 위해 조정안을 권고해 당사자 간 화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분쟁조정기구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판단했다”고 이번 분쟁조정 이유를 밝혔다.

향후 금감원은 피해기업 4곳과 은행들에 분조위 조정결정 내용을 통지할 예정이다. 조정안 접수 후 20일 내 양측이 수락할 경우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금감원은 나머지 피해기업에 대해서는 은행과 협의해 피해대상 기업 범위를 확정하고 자율조정 방식으로 분쟁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추가 분쟁조정 대상은 키코 사건 당시 오버헤지와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기업으로 한정한다.

키코는 환율변동에 따른 손해위험을 피하기 위한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 KIKO)’ 방식의 환 헤지 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변동하면 수출 중소기업은 약정환율로 은행에 외화를 팔 수 있다.

대신 하한(Knock-out) 이하로 떨어지면 옵션 계약이 무효가 되고, 상한(Knock-In) 이상으로 오르면 은행에 손해를 보면서 달러를 되팔아야 하는 구조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가입 기업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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