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위원장 사퇴의 뜻을 밝힌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선대위원장 사퇴의 뜻을 밝힌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뉴시안이 축구 야구 골프 등 스포츠 뒷얘기를 묶어 콩트로 풀어보는 기획물을 마련했습니다. 스포츠콩트는 실제 상황과 달리 상상으로 쓴 글이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김종인 전 국민의 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주인공입니다.

김종인-김응룡, 두 김씨 성을 가진 지도자들의 운명은 꽤나 흡사합니다. 두 사람은 굳이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이름만 대면 통용되는 걸물들입니다. 연배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40년생으로, 41년생인 김응용 감독보다는 한살 위입니다. 

두 사람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우승 제조기’ ‘킹 메이커’로서의 명성을 날렸지요. 

김응룡 감독은 영, 호남 팀을 가리지 않고 우승을 시켜주었고, 한국시리즈 승률이 100%입니다.

호남을 대표하는 해태(기아) 타이거즈 팀에서 9번이나 한국시리즈를 제패했고, 영남의 상징 삼성 라이온즈팀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꼭 10번을 채웠습니다. 이쯤되면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감독이라는 칭호를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70줄에 들어선 2012~14년 3년간은 흑역사입니다. 그는 이 기간중 한화 이글스팀에서는 최악의 실패를 맛봅니다. 8팀이 리그를 했었던 2012년은 8위, 9팀이 리그를 벌였었던 2013~14년은 계속해서 9위에 그쳤었습니다.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무른 겁니다. 지도력이 실패한 것인지, 좋은 선수들이 없었던 탓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김응용이란 명성에 걸맞지 못한 성적임은 분명합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익히 알려진대로 김위원장의 조부는 한국 법조계에서 한획을 그은 가인 김병로 선생입니다. 독일에서 학부를 나와 석박사 과정을 거쳤지요. 세부 전공분야는 재정학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한 때문인지 독일식 경제민주화에 해박합니다. 서강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지내다 박정희 정부때 자문역할로 경제개발 계획 수립에 참여했지요. 이어 1980년 국보위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뒤 전두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했지요. 이후 1981년 민정당 국회의원이 된뒤 노태우 정부때는 청와대 경제수석, 보사부 장관 등을 지냈습니다.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돼 한때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으나 2004년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돼 정계에 복귀한뒤 2012년 보수진영에 가담해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킵니다. 2016년에는 진보진영에 서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에 크게 기여합니다. 진보와 보수 양쪽을 넘나들며 솜씨를 발휘한 셈이지요.

그런 그는 지난해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별의 순간'이 왔다고 추켜세우지요. 이후 그는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에 임명됐지만 한달여만에 결국 캠프를 떠나지요. 그는 10일 보도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여부에 대해 "이전에 얘기를 다했다. 뭘 더 물어보는가"라고 답했습니다.  윤후보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이미 그렇게 됐는데 찾아오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스스로 윤을 만날 계획은 없지만 찾아오면 만날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도 들립니다. 

여의도에서는 김 전 위원장의 역할이 끝났다고 여기는 진영과 아직은 남아있다는 의견이 나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공식적으로 활동할 공간이 당분간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걸물들도 나이가 들면 도리가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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