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찬 뉴시안 편집국장
김수찬 뉴시안 편집국장

[뉴시안= 김수찬 편집국장]지난 13일 끝난 제16대 대만 총통선거(대선)를 지켜보면서 두가지 점에 놀랐다.

먼저 선거 결과이다.

중국의 전방위 압박에도 불구하고, 친미·반중 성향인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 칭더 후보가 승리했다. 대만은 지난 1996년 직선제 도입 이후 민진당과 친중 성향의 국민당이 8년 주기로 번갈아 집권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민진당 후보가 중국의 치밀하고 집요한 방해공작을 뚫고 친중 성향 후보를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3연속 집권에 성공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라이 당선인은 지구촌 첫 대선에서 대만이 민주진영 첫 번째 승리를 가져왔다대만이 전세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거의 외면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외교관 답지 않게 대만 국민들의 선택을 거칠게 비난했다. “대만독립은 죽음의 길이다. 중국은 결국 완전한 통일을 실현하고 대만은 반드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선거 결과보다 더 놀란 것은 대만의 투개표방식이다.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등 국내 언론은 물론 블룸버그TV 등 주요 외신들조차 대만의 '아날로그적인' 개표 방식을 앞다퉈 다뤘다. 언론 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 SNS에서도 대만의 개표방식이 주요 콘텐츠로 화제에 올랐다.

언론보도와 SNS 등에 따르면, 대만은 투표 관리원이 투표함에서 투표용지를 하나씩 꺼내 기표된 후보자의 이름을 크게 외치면서 머리 위로 높이 들어 보인다. 그런 다음, 다른 관리원이 칠판에 적힌 후보 이름 밑에 바를 정()’를 그어가며 득표수를 집계하는 100% 수동 개표를 진행한다. 또 특이한 것은 투표 종료 즉시 투표함 이동없이 그 자리에서 개표가 이뤄진다. 투표소가 바로 개표소로 전환된다.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마련된 관람석에서 개표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개표가 모두 끝나면 개별 투·개표소의 개표 결과를 건물 외벽에 부쳐 일반에 공개한다. 동시에 현··구 등 지역 선거운영센터에 개별 투·개표소의 개표 결과 보고서가 모여들고, 전산을 이용한 중앙 집계가 이뤄진다. 개표가 완료되는데 약 5시간만 소요될 정도로 당선자가 결정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개표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부정의혹이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대만의 이런 투·개표 방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만은 1996년이 돼서야 총통을 직선제로 뽑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자개표 대신 수작업으로 일일이 개표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외 언론들이 새삼스럽게 이번에 대만의 투개표 방식에 관심을 보인 것은 부정선거의혹이 우리나라는 물론 글로벌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대만은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보니 그런 의혹에서 훨씬 더 자유롭지가 않다.

외신들은 대만의 수동 개표 방식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 블룸버그TV의 이본 맨 홍콩 특파원은 타이베이의 한 투표소의 개표 장면 영상을 자신의 엑스 계정에 올리며 대만의 수동 개표 방식은 다소 고루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공정하고 안전하며 중국 등 외부의 개입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해 준다고 말했다.

대만은 처음부터 수개표 방식을 고수했지만, 편리성과 효율성 때문에 전자개표방식을 채택했다가 위헌 판결 및 해킹에 의한 부정선거 의혹 등의 이유로 수동 개표방식으로 되돌아간 나라도 많다. 2003년부터 일부 재외 국민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도입했던 프랑스는 2017년부터 일부 투표소를 제외하고 기표소 직접 투표와 수개표로 전환했다. 러시아 등 외부 세력의 해킹에 의한 부정선거 우려때문이었다고 한다. 독일도 전자 투개표 도입 10년 만인 2009년 전면 수개표로 바꿨다. 당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전자 투개표기를 사용하면 소프트웨어 하자와 결과의 조작 여부를 유권자들이 알아차리기 어렵다며 전자투개표기 사용은 위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권자 수, 사전 투표, 부재자 투표 등 선거제도와 선거관리 시스템에 있어서 각 국이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를 둘러싼 한점 의혹도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의혹해소를 위한 비용이 얼마가 되더라도 분명 치러야 할 가치가 있다. 아무리 편리하고 빠르다해도 정확성과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투·개표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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