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멋진 도시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스카이라인이다.강북에 고층건물을 짓겠다는 발상은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다.(사진=뉴시스)
서울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멋진 도시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스카이라인이다.강북에 고층건물을 짓겠다는 발상은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다.(사진=뉴시스)

[뉴시안=한경심 편집위원] 선거철이다. 후보자들의 이력과 공약이 한가득 담긴 두툼한 선거 공보물 봉투가 찢어지기 일보 직전 상태로 도착했다.

젊어서는 이념이 중요해서 평소 내가 믿는 이념과 가장 비슷한 정당과 그 후보를 별다른 고민 없이 찍었다. 이념이 중요하다 보니 어느 모임에서 나와 다른 정치 성향을 지닌 경상도 아줌마와 말다툼을 벌인 적도 있다. 나 역시 경상도 아줌마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 그런 거창한 이념은 대통령을 뽑을 때나 돌아보게 되고,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는 후보자 됨됨이나 공약에 관심을 두게 된다.

지하철을 끌어오고 공터는 주차장으로 만들겠다는 공약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한적한 마을이다.

지하철도 들어오지 않아서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버스 타고 한참 가서 갈아타야 한다.

이런 동네이다 보니 자연환경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어서 산책을 즐기게 되었다.

이곳에 전철을 끌어오고 복합문화센터를 세우겠다는 공약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지연됐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들었다.

이 동네 이사 온 지 꽤 됐는데, 이사 왔을 때 개천 주변 헌집들이 막 헐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는 이명박의 청계천이 유행이었던 때라, 이 작은 동네의 개천 정비도 자연 암석과 시멘트를 섞어 바르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워낙 바위가 좋기로 유명해서 연산군이 자주 놀러왔다는 이곳에는 정자도 있고,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이 한양 제1경으로 꼽았다지만 그 좋다는 바위는 지금 시멘트 둔치 아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이곳은 아직 텔레비전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일 만큼 예전 동네 모습을 갖고 있는 편이다.

이번 지방선거 후보들의 공약사항이 담긴 공보물을 받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관련된 사항이 없나 찾아보았다.

역시 있었다! 매일 산책하는 박물관 앞 아주 작은 공터와 성당 뒤 언덕의 공터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그리고 동네 뒷산 작은 계곡과 관련된 사항도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도시 공터

한 후보자가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박물관 앞 작은 공터는 이미 잔디와 풀이 적당히 있고, 아담한 벤치도 두 개나 있는 곳이다.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마지못해 “더 잘 조성하겠다는 의미”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바로 옆에 있던 꽤 괜찮은 공터도 얼마 전 놀이터로 바뀌면서 녹음을 드리우던 멋진 나무들이 대폭 잘려나갔다.

흙 대신 우레탄을 깐 놀이터에는 그늘이 사라져 이제 아이도 사람도 보기 힘들게 됐다.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언덕 공터에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또 다른 후보자에게 전화를 넣어보았더니 “흙바닥을 시멘트로 바르지는 않겠지만 정비는 필요해 보였다”고 말했다.

지금도 주차할 사람은 알아서 구석에 잘 주차하고 있는 이 공터는 쓰레기를 빼면 나무와 풀이 어우러진 꽤 멋진 흙길이다.

무료주차장이라지만 주차장을 만들면 누가 이 주차장을 이용할 것인가를 두고 분란이 일게 틀림없다. 그러면 곧 유료주차장으로 바뀌고 시멘트 바닥이 깔리고 선이 그어지고 관리인이 들어서겠지.

미세먼지와 이상고온을 막아줄 최후의 보루 녹지공터

예상했던 바대로 미세먼지가 주요 쟁점이 된 이번 선거에서 후보자들의 공약은 하나같이 공터를 정비하고 무슨 시설을 끌어들이겠다는 내용이다.

한 시장 후보는 강북도 강남처럼 고층건물을 짓도록 허가하겠다고 공언했다.

강북의 스카이라인은 산이 보여야 제격이다.

또 미세먼지를 없애는 손쉬운 방법은 물청소를 많이 하고 나무와 녹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수풀 1핵타르는 한해 미세먼지를 180kg 가량 없애주고, 여름철 이상고온을 낮춰준다. 그런데도 후보자들은 녹지와 흙바닥 공터를 무엇으로 바꾸겠다는 내용뿐이니 답답하다.

건축가 이일훈씨는 "이제 도시 건축도 무엇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도 후보자들은 예전 개발중심의 사고방식으로 ‘떴다 봐라’식의 전시행정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 건설 위주의 도시정비는 지난 정권에서 물리도록 봐왔다. 시민들은 질려 있는데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전화를 끊기 전 후보자들에게 당부한 한 가지는 청소다.

공터에 쌓인 쓰레기, 골목에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고, 파리처럼 거리를 자주 물청소한다면 산이 보이는 우리 도시는 있는 그대로 멋진 도시가 될 수 있다.

제발 공터와 녹지, 동네 뒷산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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