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대대표 등 당직자들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침울해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대대표 등 당직자들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침울해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한경심 편집위원] 13일 오후 6시,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한국정치의 보수 세력이 몰락의 순간을 맞았다.

‘문재인 정권을 심판한다’는 기치를 내세우며 지방선거에 임한 보수 세력은 오히려 자신들의 몰락을 심판받는 형국에 처했다.

한국 정치사상 보수가 이렇게 참담하게 패한 기록은 없다.

80% 이상의 지지를 얻은 민주당의 승리로 나타난 출구조사가 발표되자마자 자유한국당의 일부 당원들은 자칭 ‘자유한국당재건비상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농성에 들어갔다.

여의도 당사에서 그들은 홍준표 당 대표 등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며 국민 앞에 부복했다.

그들은 ‘보수의 적통’인 자유한국당의 참패 원인으로 홍준표 대표의 무능 및 전횡, 그리고 저질스런 언행 등을 꼽았다.

어느 보수인사는 “이번 지방선거는 남북미 회담의 ‘쓰나미’가 모든 중요한 정치적 안건을 다 덮어버렸다”고 했고, 또 어떤 인사는 “차라리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 세우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반성 부족한 보수, 민심을 몰랐다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민주당의 승리로 시작된 선거라는 말이 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워낙 확고했고, 남북회담으로 시작된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가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80.2%로 나왔고, 이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지지율과 일치한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이 물꼬를 튼 남북교류와 평화정책을 계속해나가기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방송3사의 심층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운영을 더 잘하도록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와 '정부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도록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라는 입장 중 어느 쪽에 더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유권자의 64.2%가 정부 여당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보수 세력이 이렇게까지 참담한 결과를 맞았을까? 보수 세력이 패배 원인을 남북미회담의 여파로만 치부한다면 보수 세력에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 세력의 패착은 이미 탄핵정국에서 시작됐다. 탄핵정국 이후 보수 세력은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반성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많은 지지자들은 이미 그때 실망하고 그들 곁을 떠났다. 일부 ‘태극기부대’를 제외한 건전한 보수 지지자들은 한마디로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 이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100석이 넘는 국회의원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보수 세력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남북평화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준 데 비해 보수 세력은 정부의 발목잡기나 막말 사태로 국민을 더욱 실망시키고 말았다.

이번 선거 유세에서 홍 대표는 지원유세에 나서지 말아달라는 한국당 후보자들의 요구를 바라보는 보수 지지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남북미회담을 ‘정치쇼’라고 비난하고, 우리에게도 핵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후보자들은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분단 상황에 안주해온 보수 세력은 이제 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에서 보수 세력은 온실 속 같은 안전한 텃밭을 차지해왔다.

보수 세력에서 도대체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가?

일명 ‘웰빙 보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분단 상황에서 ‘종북몰이’로 위기를 고조하면 쉽게 표를 얻었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이 최소 40%라는 정치적 기득권을 누려온 보수 세력은 남북이 화해하고 이 땅에 평화가 정착되며 경제적 부흥까지 불러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오늘날의 정세에 어떤 비전이나 메시지도 전해주지 못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 20%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반토막이 났음을 말해준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의 텃밭인 강남3구, 안보에 민감한 경기 북부지역와 강원도, 그리고 경북과 경남에서도 민주당이 득표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안보에 민감한 경기 북부지역은 남북 평화에 마음이 풀렸을 것이고, 강원도는 남북경협을 바라는 바람이 작용했을 듯하다.

강남3구는 그야말로 보수 정치인들의 수준이 ‘제대로 된 정통 보수’를 원하는 강남사람들의 수준에 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정책보다 추문에 초점을 맞춘 보수 세력의 선거 전략이 추문보다 더 저질스럽게 느껴졌다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국민들이 보수 세력에서 도대체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보수 세력의 대개편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 절실함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정통 보수의 적자가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이 대구 경북 지역만 겨우 사수한 가운데,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홍준표 대표는 이미 사퇴를 예약해놓았고, 바른미래당은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는 계속 함께 할 수 없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도보수 내지 개혁을 외친 바른미래당은 정책은 좋았을지 몰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모든 보수 세력,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애초 지역당의 한계를 안고 출발한 민평당은 어쩌면 민주당과 연정하거나 각자도생할 것이고, 바른미래당은 분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이합집산이 향후 보수 세력을 재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이끌 지도자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때 인물은 이번 선거에서 전패했고, 보수 세력 지지자들은 그런 ‘올드 보이’를 다시 보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경남지사 김태호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부터 일찌감치 자유한국당과 적당히 선긋기를 하고 이번 선거에도 선전했다.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보수 세력이 새로 판을 짤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러기 전에 모든 보수 세력은 우선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맹목적으로 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태극기부대’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기대 예전처럼 분단 위기만 부르짖어서는 국민 20% 이상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보수 세력은 시효가 다해가는 철지난 분단 상황에 기생하지 말고 제 힘으로 서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정통 보수, 새 시대에 맞는 비전을 보여주는 보수, 격식과 품격을 갖춘 멋진 보수 세력으로 나타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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