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의 모습(제공=뉴시스)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의 모습(제공=뉴시스)

[뉴시안=손진석 기자] 서울시는 대한항공이 소유하고 있는 종로구 송현동 3만7000여㎡의 부지 일대에 대해 몇 년째 수의계약으로 매입하겠다고 매달리고 있지만 가격에 대한 이견이 커 여전히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는 일방적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하며 송현동 부지 매입을 밀어붙이고 있어 공익을 핑계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이달 말 대한항공 소유의 송현동 부지 일원에 대해 기존의 송현동 부지를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했던 결정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문화공원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을 담고있는 지구단위계획변경안을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상정해 처리를 강행할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한항공은 12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송현동 부지의 문화공원화의 문제점 등에 대한 권익위에서 조사와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인 만큼 일방적으로 절차를 강행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서울시의 일방적 도시계획결정절차를 보류하도록 권고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지난 6월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송현동 부지 문제는 대한항공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매출 급감으로 발생한 유동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구책 일환으로 유휴자산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 송현동 부지가 대상이 되어 매매로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로 인한 심각한 경영환경 악화에 따라 지난 4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2000억원 가량의 긴급자금을 수혈 받은 바 있다. 또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송현동 부지를 포함한 유휴자산 매각을 위해 매각주관사 선정 및 매수의향자 모집 절차를 진행했으나, 서울시의 갑작스러운 공원화 및 강제 수용 의지 표명에 따라 매각절차가 흐지부지됐다.

문제는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일대를 사업 구역으로 지정해 수용 절차를 밟으면 대한항공이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이달 말 지구단위계획변경안을 서울시가 통과시킬 경우 강제 수용절차를 통해 송현동 부지를 취득하겠다는 의사를 확정짓는 것이다.

부동산 소유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공익적 목적이라는 것을 내세워 시의 방침에 무조건적으로 협조하라는 묵시적 협박으로 사실상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연내 매각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대한항공의 유동성 위기 극복 노력에 지장을 줄 것이 명확해진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 1월 송현동 부지를 ‘미대사관직원숙소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용도나 높이 등을 완화하는 등 송현동 부지의 개발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특별계획구역이란 ‘특별한 건축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복합적 개발이 필요’하거나, ‘우수설계안을 반영하여 현상설계’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 지정되는 것인데, 부지의 규모가 큰 곳에서 대규모로 복합적인 개발을 하는 곳을 대상으로 지정되는 것을 말한다.

대규모 쇼핑단지나 전시장, 터미널 등 뿐만 아니라, 초고층 주상복합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어 개발된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코엑스, 롯데월드 등이 모두 특별계획구역으로 개발된 사례들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일방적인 지구단위계획변경안을 통해 송현동 부지를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했던 기존 결정을 바꿔 급작스럽게 입장을 번복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지정할 경우 도시계획시설사업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이 경우 관계법령상 송현동 부지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실시계획인가를 받아야 하고, 중앙토지수용위원회로부터 공익성 인정도 받아야 한다.

서울시가 공익을 위해 갑질을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 지구단위계획변경안의 내용에 서울시조차도 ‘어떠한 내용’의 문화공원을 조성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으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구상해 실시계획인가를 받기까지 수 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이번 지구단위계획변경안이 통과될 경우 대한항공으로서는 서울시가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워 강제 수용에 나설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더군다나 강제수용이 이뤄질 경우 수용재결, 이의재결, 소송 등의 절차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대한항공이 보상금을 확정해 지급받기까지 후속절차만 몇 년이 소요될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갈 길이 바쁜 대한항공의 발목을 잡아도 아주 단단히 잡은 것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강행처리에 대해 대한항공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구단위계획변경안이 통과되면 강제 수용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용 절차로 이어질 경우 송현동 부지의 정당한 가치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제 수용 절차로 가서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가 이뤄지더라도 송현동 부지와 같은 대규모 필지의 경우 그 가치를 비교하기 위한 거래사례나 적정 단가를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서울시는 시장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금액으로 송현동 부지를 취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송현동 부지 헐값 매입 의혹이 불거지자 전면 부인하며 “토지보상법은 공익사업에 따른 보상액을 산정할 때 해당 공익사업으로 인한 토지의 가격 변동은 고려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공원 부지로 지정해서 헐값에 사들인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정하고 정확하게 감정평가를 진행해 가격을 매길 계획”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또한 강제 수용 절차로 이어지더라도 서울시가 연내에 송현동 부지를 취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구단위계획변경안 통과 이후 다른 민간 매수의향자들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대한항공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회사는 다급함한데 지구단위계획변경안 통과되면 시가 강제수용에 나설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며 “권익위에서 지난 6월 접수한 문화공원 지정 절차의 위법성과 관련해 조사 중인 상태에서 서울시가 독단적으로 관련 절차를 강행하지 않도록 잠정적인 조치라도 취하여 줄 것을 긴급히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가 문화공원 지정을 강행하는 것은 권익위를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며 서울시의 태도를 지적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