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발주한 해군의 차기고속정 운항 모습 (사진=뉴시스)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해군의 차기고속정 운항 모습 (사진=뉴시스)

[뉴시안= 손진석 기자]방위사업청의 ‘검독수리-B Batch-I’ 해군 차기고속정 도입 사업 과정에서 불거진 관리부실 문제가 결국 전체 고속정 엔진 균열의 원인일 가능성이 커졌다.

방사청과 기품원은 설계 문제로 인한 해수유입을 원인으로 추정했으나 최근 해군이 제기한 내구도 시험 요구 근거를 살펴본 결과 차기 고속정 사업의 H사 C32 엔진 도입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난 내구도 시험 면제 사실이 밝혀졌다.

20일 국정감사에서 국방위 소속 홍영표 의원이 차기고속정 사업과 관련해 제출받은 방사청 고속함사업팀의 2013년 12월 ‘장비획득 기술심의회 결과보고’에 따르면 해당 함정의 엔진 기술협력 생산사인 H사는 미국 해군 MIL-E-24455에 해당하는 검증자료를 체계업체인 조선소에 제출하기로 확약했다.

엔진 성능에 대한 8시간의 시험을 125회 반복한 뒤 분해해 공장 검사를 실시하거나 국내‧외 해군함정에서 1000시간 이상 동일 엔진을 운용했다는 실적을 제출해야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체는 어느 조건도 만족시키지 않고 방사청으로부터 내구도 시험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1월 방사청과 업체가 주고받은 기술심의회 후속 조치 공문을 살펴보면 업체는 약 10억원에 달하는 내구도시험 소요 예산을 언급하며 필요한 경우 시험 후 결과를 제출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해당 비용을 방사청에 요구했다.

미해군 MIL-E-24455에 해당하는 내구도시험이 불가피함을 인지했던 업체는 돌연 2015년 4월 미고속선의 1800시간 운용 실적을 제시, 별도의 내구도시험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하지만 방사청은 한술 더 떠 업체가 기존에 확약한 검증자료가 아닌 엉뚱한 자료에 더해 우리 해군 군수지원정과 유조정에서도 해당 엔진을 1800시간 이상 운용했다며 2015년 5월 7일 차기고속정에 탑재될 엔진 내구도시험 면제를 최종 결정했다.
 
면제 사실 자체보다 더 문제인 것은 방사청의 해당 결정이 단순 판단 착오가 아닌 방산비리에 준하는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체계업체인 H사가 2015년 4월 방사청에 회신한 공문을 살펴보면 우리 해군 함정에서 사용한 엔진의 모델은 동일하나 출력이 상이해 내구도 시험을 갈음할 실적이 아니란 것을 방사청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사청은 현용 해군함정에서의 엔진 운용 실적을 내구도시험 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들먹였다.

결국 내구성 검증도 온전히 거치지 않은 엔진을 탑재한 채 전력화된 신형 고속정 4척과 현재 시운전 중인 1척까지 2020년 10월 기준 총 5척 함정의 엔진 개방검사에서 유사한 형상의 균열이 발견됐다.

4척의 함정 모두 800시간 이내에 엔진실린더가 파손되는 결함이 있었고 심지어 시운전 중인 5번함은 운행 500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균열이 발생했다. 선도함의 경우 두 번의 부품 교체에도 세 번째 엔진 실린더가 깨진 상황이다.

최근 해군의 내구도시험 요청으로 방사청은 최초 엔진 성능 검증 필요성이 제기된 지 7년만에 제작사에 시험을 재요구했으나 업체는 2020년 7월 내구도시험을 위한 소프트웨어, 시험장 확보 등의 사유로 시험 종료까지 총 30개월이 소요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해군이 꼼짝없이 30개월 동안 언제 깨져 멈출지 모르는 엔진을 달고 작전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방사청은 해당 엔진 도입과정 전반에 대한 내부 감사를 시작했다.

2020년 4월 이미 4번 함까지 모든 엔진 실린더가 깨졌는데 8월이 되어서야 현재 사업팀의 자체 감사의뢰로 감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엔진 내구도 시험 면제를 결정한 고속함사업팀장은 올해 6월 퇴직해 사실상 자체 감사로 사업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홍영표 의원은 “차기고속정 사업의 엔진 도입 과정에서 결코 용인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관리 부실이 일어났다”고 비판하며 “엔진 내구도시험 면제 과정에서 불법적인 측면은 없었는지 방사청이 명백히 밝혀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필요하면 감사원 감사를 통해서라도 엔진 결함의 원인을 밝혀내고 현용 및 후속함정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차기고속정 사업은 총 2차에 거쳐 130미리 유도로켓 등 무장을 강화한 30여척의 신형고속정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2002년 제2연평해전 이후 소요가 제기됐다. 이번 엔진 결함이 발생한 1차 사업의 예산은 1조30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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