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곡사 부도 길을 걷고자 길을 나섰습니다. 하동에서 연곡사가 있는 피아골 가는 길은 섬진강을 끼고 도는 19번 국도인데 봄날엔 벚꽃 흐드러지는 길입니다. ‘벚꽃 잎 흩날리는~ ’. 계절은 한참 지났어도 초록빛 가득한 벚꽃터널의 시원함은 때 이른 여름 더위를 날려 보내는데 충분합니다. 4차선 확장공사로 벚꽃터널 길이 줄어들어 옛정취가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번국도, 섬진강 길은 언제나 아름다운 길입니다.

 

 연곡사 경내 한구석에서 빛 잔치가 차려졌습니다. 빛이 밝습니다 그래서 벅찹니다. 초록이 아우성입니다. 부처의 자비를 빛의 세례로 받는 듯합니다. 입 꼬리는 올라가고 눈 꼬리는 내려옵니다. 염화미소입니다.

 

 

연곡사 동부도

우리나라에서 연곡사 동부도(동 승탑)는 화순에 있는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와 최고를 다툽니다. 우리나라 부도 중 으뜸이고, 동부도 중 으뜸은 상륜부입니다. 여섯 부분으로 쌓아진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상륜부의 연꽃과 가릉빈가(극락조) 조각은 서방정토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바람의 상징입니다. 석공의 숨결이 천년이 지난 오늘, 빛으로 드러납니다.

 

 

 

초여름 숲길은 연초록빛 흩어짐이 야단법석입니다. 석가의 법석은 간데없고 빛의 법석은 지금입니다. 멈추면 보이고, 귀 기울이면 들립니다. 빛은 바람을 타고 나뭇잎에 앉아 한차례의 떨림으로 그 뜻을 전합니다. 멈추어 보세요.

 

 

 

추사의 난과 대원군의 난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모르겠지만 숲길에서 마주친 ‘빛의 난’이 지금 저에겐 최고입니다. 빛은 풀잎을 살려내고, 풀잎은 검은 여백을 만들어내고, 검은 여백은 빛을 살려냅니다. 인연법이 그러하다합니다. 빛은 세상을 밝히기도 하고 숨기기도 합니다.

 

 

 

깊어진 숲의 틈으로 빛이 내렸습니다. 한 숨 돌리고 빛과 함께 자리합니다. 빛을 반기는 나무와 풀과 함께 큰 호흡을 내쉽니다. 머리 끝을 세우고 아랫 배를 불룩거려봅니다. 풀잎과 함께 광합성 중입니다. 급한 발걸음이 아니라면 한번 시도해볼만 합니다. 숲길이 좋은 이유입니다.

[ 이창수 사진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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