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7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 조현선 기자]그러니까, 10년도 더 된 얘기다. 2008년, 교복을 입은 언니들이 하나둘씩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해가 떠 있을 때면 삼삼오오 모여 발언하는 멋지고도 평화로운 모습이 이어졌다. 무언가로부터 소녀들을 지키는 예비군, 그보다 선두에 선 엄마들의 유모차부대가 생생했다.

그러나, 밤은 잔인했다. 늦은 밤이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막아달라며 모인 여학생들에게 흉포한 물대포가 넘실댔다. '겁도 없이 나섰던' 소녀들은 하나둘 나가떨어졌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됐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언니들과 어른들을 지켜봐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국민을 향한 물대포를 불가피하게 허락했고, 전 대통령의 죽음은 특정 정당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두 번의 촛불은 곧 두 개의 표가 됐다. 사람을 봐야 한다, 정당을 봐선 안 된다는 정치 선생님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선택이었지만 나름대로 핑계가 있는 논리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한번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치열한 경선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윤석열 후보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그가 정의와 상식을 강조하자 '내로남불' 정부에 화가 나있던 2030과 중도층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특히 보수층에서는 현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윤석열이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재명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도지사에 오른 후 전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화끈한' 발언을 이어갔고, 도민들에게 추가로 지원금을 지급하며 경기도민에게는 호응을, 이외 지역 시민들에게는 부러움을 샀다. 두터운 지지층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그대로 흡수하겠다는 민주당의 의도가 돋보였다. 

그런데 경선 후 두달 여가 지난 지금, 여론이 심상치 않다. 사실은 두 후보의 자질이 심각한 상황이다.

윤 후보의 아킬레스건은 부인인 김건희 씨다. 논란이 수없이 이어져도 묵묵부답이다. 본인도 마찬가지다. 전두환을 옹호한다거나, "사과할 의향이 있다" 등의 언행으로 인한 논란이 이어졌다. 본인이 태어날 때부터 검찰총장으로 나고 자란 줄 아는 모양이다. 

이 후보는 지난 2017년 경선 시절부터 부인의 SNS, 본인의 일베 커뮤니티 논란, 가정사 등으로 늘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화룡점정은 크게 망친 자식농사다. 그의 아들은 도박, 성매매 등을 암시하는 글을 여럿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는 "아들에게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죄송하다."고 했지만 이를 납득할만 한 이해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주요 의혹을 받던 측근이 의문의 자살을 했음에도 '어쨌든 뭐' 명복을 빈다는 그의 언행에 경악했다. 이 후보 역시 전두환의 '성과'에 대한 언급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야말로 가관이다. 경선 이후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그간 준비해 온 것들을 펼쳐 보이기에도 빠듯한 시간인데 아들 챙기랴, 입 조심하랴 바쁘다.  

어느 선거가 안 그렇겠냐만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서는 울분을 토하는 의견이 유독 많다.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이 싫어서 상대 후보를 뽑겠다는 말도 바뀌기 시작했다. 아무리 차악을 뽑기 위한 선거라지만 어느 한 쪽도 답이 없어서다. 한숨만 나온다. 그래서일까, 코로나시대인 점을 고려해도 지난 대선의 축제같은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요즘 대한민국 온국민 몰래카메라를 보는 기분이다, 유력 후보라는 두 사람 모두 가관이다", "6000만 인구 중 인물이 이렇게도 없을 수가 있나, 이꼴 보려고 조상들이 그렇게 열심히 나라를 지켰나".

요즘 SNS 커뮤니티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논조다.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이낙연, 홍준표 후보를 데려오라는 의견도 많다. 물론 이재명후보나 윤석열후보 모두 사퇴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부인의 의혹 쯤이야, 아들의 성매매·도박 쯤이야. 조금이라도 국민을 존중한다면 이렇게 뻔뻔하지 못할 것이다. 

이쯤에서, '어른'들의 착각을 짚어본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진 윗세대와는 다르다. 김대중, 노무현으로부터 이어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고, 이같은 윗세대를 꼰대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2030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향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국정농단에 분노해 광화문으로 제일 먼저, 제일 많이 나섰던 것도 이들이다. 그러나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를 향해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부동산 문제를 필두로 답답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한 셈이다. 특정 정당, 특정 인물만을 지지해 왔던 어른들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동시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 우리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가장 잘 아는 세대다. 멀지 않은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로 눈물짓고, 교과서를 통해 1980년 5월의 광주를,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을 배웠다.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이라야 한다는 것을 교과서로 배웠고, 광화문에서 몸소 체험했다.

또 우리는 바뀌어가고 있다. 19대 대선은 연령이 적을수록 투표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여왔던 관례를 깬 최초의 대선이었다. 법정공휴일인 선거일은 '쉬는 날'일 뿐이라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처음 촛불을 들었던 그때의 10대는 5년 전 20대가, 지금의 30대가 된 결과다. 각자 가진 뜻은 달라도 긍정적인 변화다. 

오는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우리가 캐스팅보트를 쥔 최초의 선거다. 우리는 투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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