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박은정 기자]정부가 또 남의 돈으로 생색내기를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지난 27일 농심과 삼양식품, 그리고 오뚜기까지 라면업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기업들이 일제히 라면값을 인하했다. 라면업계가 라면값을 내린 것은 2010년 원료값 하락으로 제품가를 낮춘 이후 13년 만이다.

이례적인 인하 행렬 뒤에는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으로 내렸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 이후 라면업계는 "밀 가격이 떨어졌지만 인건비나 물류비 등은 치솟고 있다"며, 가격 인하에 주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국민 간식', '서민 간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라면업계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결국 속앓이를 하다 백기를 들었다. 

라면업계는 "라면 가격 인하로 서민들의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인하 소식을 전했다.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시대에 라면 가격을 낮춘 것에 만족해 하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소비자와 시장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특정 품목의 시장 가격에 대해 정부가 "배놔라 감놔라"하는 식으로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자연스런 시장경제 흐름에 역행한다는 우려때문이다.

정부 압박에 라면업계가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을 낮췄지만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실적이 악화될 경우 손실을 막기 위해 정량을 줄이거나, 인건비를 낮추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소비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가 발생한다. 라면 가격인하 소식이 전해지면서 며칠 사이 해당 기업의 주가가 흔들거렸다. 정부의 부당한 시장개입으로 해당 기업에 투자한 주식 투자자들의 손해는 누가 보전해 줄 수 있을까. 

경제부총리까지 나서서 민간기업을 희생양 삼아 물가 잡기에 온 힘을 쏟는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아 보인다. 과거 70-80년대나 익숙했던 풍경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잘못된 원전 및 에너지 정책을 통해 시장의 흐름을 거스리는 정부 정책이 가져온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장은 시장이 돌아가는 나름의 원칙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원칙들이 정부 개입으로 일순간 무너진다면 이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일시적 효과가 있을 지 몰라도, 결국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부총리가 할 일은 민간기업의 특정 제품에 대한 가격을 올려라 내려라 할 게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의 경제운용 정책으로 나라살림 전반을 살펴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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