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유통업계는 고물가로 인해 홍역을 치뤘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 가운데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기도 하고, 가격은 유지하되 중량을 줄이다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2023년 유통업계는 고물가로 인해 홍역을 치뤘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 가운데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기도 하고, 가격은 유지하되 중량을 줄이다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 박은정 기자]2023년 올해는 고물가로 인해 유통업계 전반적으로 눈치싸움이 치열했던 한 해였다. 상반기부터 원재료값과 인건비·물류비가 치솟으면서 식료품업계는 가격인상을 연달아 발표했다.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인상을 철회하는 곳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식료품의 중량이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가격 인상이냐, 철회냐…치열한 눈치싸움

2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2.74로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했다. 이에 정부는 올초부터 '물가안정' 카드를 내세우며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식료품업계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6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는데 라면 가격도 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발언하면서, 그 다음달 라면업계는 주요 제품 가격을 5% 안팎으로 내렸다. 

농심이 선제적으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가격을 내리고, 이어 삼양식품과 오뚜기·팔도 등이 가격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이 외에 롯데웰푸드·해태제과 등 제과업계도 일부 제품의 가격을 내렸다.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에 부담을 느껴 가격 인상을 단행하기로 했다가 철회하는 곳도 눈에 띄게 많았다. 풀무원은 11월부터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초코그래놀라 등 유·음료 3종 가격을 올릴 계획이었지만 철회했다. 오뚜기도 대표 제품인 카레와 케첩 등 24종의 편의점 판매가를 인상하기로 했으나 계획을 접었다. 

롯데웰푸드 역시 이달부터 CU에서 파는 빅팜을 10% 올리기로 한 결정을 철회했다. GS25에서 판매하는 빅팜 가격도 다시 내렸다. 동아오츠카도 컨피던스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유지하기로 했다.

최근 식료품업계에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자 정부가 직접 개입에 나섰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관련 부처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최근 식료품업계에서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자 정부가 직접 개입에 나섰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관련 부처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물가안정, 결국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으로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은 또 다른 문제로 불거졌다. 가격인상 요인이 해결되지 않은 채 가격만 억누르다보니, 식료품 업계가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중량을 줄이게 된 것이다. 일명 '슈링크플레이션(Shrink flation)' 현상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 9개 품목 37개 상품의 용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바프(HBAF)의 허니버터아몬드 등 견과류 16개 제품, CJ제일제당의 백설 그릴 비엔나(2개 묶음 상품), 서울우유협동조합의 체다치즈 20매 상품과 15매 상품 등의 용량이 7.7%~12.5% 줄었다.

이 외에 △동원에프앤비의 양반 참기름김·들기름김 △해태 고향만두 △오비맥주 카스 캔맥주(8캔 묶음) △풀무원의 올바른 핫도그 등 핫도그 4종의 용량이 1.3∼20% 감소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식료품 업계가 '꼼수 인상, 편법 인상을 했다'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또다시 정부가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물품을 제조하는 사업자가 용량 등 상품의 중요사항을 변경하고도 알리지 않는 행위를 부당행위로 지정하기 위해 소비자기본법의 하부 고시인 '사업자의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한국소비자원은 내년 1월 제조업체와 자율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제조업체는 생산제품의 용량 변경 시 해당 사실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고, 소비자원은 해당 정보를 취합해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방식이다. 

신세계푸드 노브랜드 버거가 지난달 단품 2900원이라는 가성비를 내세운 짜장버거를 출시하며 흥행을 기록했다. [사진=신세계푸드]
신세계푸드 노브랜드 버거가 지난달 단품 2900원이라는 가성비를 내세운 짜장버거를 출시하며 흥행을 기록했다. [사진=신세계푸드]

'짠물소비' 트렌드로 '가성비' 제품 흥행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유통업계는 올해 파격적인 반값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가격이 저렴한 가성비 상품을 출시하거나 할인 폭을 늘려 고객 확보에 나섰다. 

지난 11월 신세계푸드는 자사 햄버거 브랜드 노브랜드를 통해 단품 2900원의 '짜장버거'를 출시했다. 세트도 4900원으로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 약 7000원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이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소비자 반응은 크게 돌아왔다. 짜장버거는 출시와 동시에 일 평균 1만여 개씩 판매되면서 출시 3일 만에 누적 판매량 3만개를 기록했다.

편의점 업계의 가성비 도시락도 흥행했다. GS25가 지난 10월 25일 선보인 '혜자로운 알찬한끼세트'가 김밥 카테고리 역사상 최단 기간 누적 판매량 80만 개를 돌파한 것이다. 전체 김밥 카테고리 매출에서도 1위에 등극하며 90%에 달하는 판매율을 세웠다. 이마트24도 3000원대 도시락 제품을 출시했다. 3900원의 저렴한 가격에 반찬이 6개로 구성돼 있어 '가성비 도시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독 추운 겨울, 연이은 구조조정

한편 유통업계는 고물가로 인한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구조조정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최근 11번가가 2008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한 것에 이어 GS리테일과 롯데마트·롯데홈쇼핑 등도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소비자도, 기업들도 불안정한 물가로 어려웠던 한 해였다"며 "2024년 용의 해인 갑진년(甲辰年)을 맞아 다시 날아오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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