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두려운 스킨십

에에에엥. 모기다! 가을을 넘어 겨울이 보이기 시작했는데도 악착같이 살아 남았다. 인간이 잘 살자고 만들어 놓은 문명의 혜택을 모기까지 누리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 아파트를 올라와 따뜻한 방 구석 어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새벽잠을 설쳐 짜증 섞인 마음에 에프킬라를 떠올린다. 하지만 방에서 계속 자야하니 살충제를 뿌리는 것도 찜찜한 일이다. 손사래로 쫓아 버리면서, 그래도 덤비는 녀석은 가만두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모기와 에프킬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첫번째 국회 시정연설에서 벌어진 일을 그렇게 비유했다. 연설을 마친 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며 악수를 청했을 때 “에프킬라를 발견한 모기들 같은 상황”이었다고 말이다. 대립각을 세우면서 다퉈야 하는데 함께 잘 해 보자면서 손을 내미니 얼마나 불편했겠느냐는 취지였다. 지난 1일 문 대통령의 두 번째 시정연설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로 나름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변함없이 미소 띤 악수로 다가갔다. 속내야 어쨌든 손을 마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손을 내미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나중에 볼멘 소리를 할 지언정.

한 손엔 현수막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악수를 받았던 의원도 있었다. 그 날 자유한국당이 준비했던 현수막에는 “공영방송 장악 음모”, “북한 나포어선 행적” 등이 적혀 있었다. 방송장악을 주장하며 국회 보이콧까지 선언했다 이틀 전에 이미 철수했던 상황이었다. 어선이 나포됐던 것은 선주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일 뿐이었다. 애초에 대통령 시정연설이 있는 자리까지 들고 올 만한 깜냥이 못됐다. 본회의장에 현수막이 등장한 것은 최초이고 명백한 불법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번에도 대통령의 악수가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생존이 명분

야권 특히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문 대통령은 정권을 빼앗아 간 장본인이다. 그냥 치러진 선거도 아니고 촛불혁명이라는 국민의 명령에 따른 결과였다. 게다가 그 불꽃이 좀처럼 사그라들줄 몰라 보인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73%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취임 6개월을 기준으로 하면 역대 두 번째라고 한다. 같은 시기 자유한국당은 한 자리 수 9%에 그쳤다. 10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이라고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성적표다. 한 뿌리였던 바른정당은 6%였으니, 단순 합산을 해도 보수야권이 받는 지지는 고작 15%인 셈이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에프킬라 앞의 모기 신세가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보수통합이 시작됐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에게는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고리 3인방을 통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돈을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1년이 넘어 비로소 3인방 모두 구속이 됐다. 박 전대통령 출당에 반대해 온 원내의 친박 세력, 원외의 지지자들로서는 기운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홍 대표는 3일 앓는 이였던 박 전 대통령의 “제명”을 공식발표했다. 기다리고 있던 바른정당 탈당파 10명 안팎이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이 응답했다.

보수야권으로서는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부터 단일 후보라도 내기 위해서이다.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 대해 분열된 상황이라 지지층이 결집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글쎄. 보수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은 여전하다. 유승민 의원은 “숫자만 몇 명 합치는 게 국민이 박수치는 보수 통합이 될 수 있느냐”며 지적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제명만 결정됐을 뿐, 서청원, 최경환으로 대표되는 친박 세력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 어정쩡한 채로 그대로 마무리 지어야 한 사람이라도 더 뭉칠 수 있다는 계산법일까. 생존 그 자체를 명분으로 여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커밍아웃을 기다리는 국민

어쨌든 보수 야권은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할 것이다. 통합에 그치지 않고 정말 혁신을 이룬다면 잃고 있는 국민의 신망을 어느 정도 붙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정치권 전체가 출렁이는 모양새이다.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 때 눈길을 받은 정치인이 한 사람 더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나온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다. 박 의원은 시정연설이 끝난 뒤 SNS에 문 대통령을 극찬하는 글을 남겼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베를린 선언을 듣는 것처럼 확고한 선언이었다는 것이다. 호남 정치인으로서, DJ 비서실장 출신으로서 최고의 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민의당 현역 의원의 글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공화주의”를 새로운 가치로 내세우고 나섰다. 함께 잘 살자는 것이라는데 누구와 함께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국민의당에서는 우연일 뿐이라고 하지만 “공화”라는 단어는 유승민 의원이 강조하기도 했던 말이다. 민주라는 이름으로 승자가 독식하는 대신 공공의 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개념이 비슷한 듯도 싶다.

늘 그렇듯 정치인들이 뭘 원하는지 알 듯 모를 듯 싶다. 그렇냐고 하면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지나고 보면 짐작이 맞았을 때도 틀렸을 때도 있다. 지금이 그럴 시점일까?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하지만 국회 협조 없이 정책을 펼 수 없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협치를 하려 손을 내밀려 해도 각 당들의 내부사정이 복잡하니 어느 손을 어떻게 잡아야할지부터 어렵다. 갈라서든 합치든 뚜렷하게 입장 정리부터 해야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고, 그 바람에 잠을 못이루는 것은 국민이다. 대통령은 에프킬라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지친 국민이 화를 내면 다를 것이다. 촛불은 국민의 가슴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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