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시간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시간은 개체에게 의미있는 사건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어떤 사건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끝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그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라는게 만들어졌던 2015년 12월 28일은 할머니들에게 시간일 수 있을까?

#김복동 할머니의 시간

김복동 할머니는 1941년 그녀의 시간으로는 열 다섯살에 순사의 위협을 받았고, 그나마 군복공장에 끌려가는 줄 알고 일본으로 건너 갔다. 물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정신대였다. 그 후 8년 동안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있는 지옥을 겪었다. 나라는 해방이 됐고 그녀는 스물 두살 기적적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그 이후 미국, 일본, 유럽 세계 곳곳을 돌며 증언을 이어갔다. 2012년엔 다른 할머니들과 “나비기금”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언젠가일지 모를 일본의 공식 사죄를 기다리며, 전 세계의 전쟁 성폭력 피해여성을 돕기위한 것이다. 그녀에게 2018년은 평생 홀로 살아 온 아흔 네살의 시간이다.

그녀가 겪고 있는 사건을 법적으로 보자. 우리 법은 일본 법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만든 것이다. 그녀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사실은 구구절절이 따질 필요조차 없이 상식에 맞게만 봐도 된다. 미성년자였던 그녀는 순사, 그러니까 일본 정부 공무원의 강요와 협박으로 끌려갔다. 김복동 개인에 대해 일본이라는 국가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었다. 물론 일본은 위안부 동원에 정부차원의 개입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끌려간 곳에서 일본 군인들에 의한 가혹행위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녀의 몸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들은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전쟁 중이었다는 이유로 민간인에 대한 행위까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사건이 있었던 1941년에 대해 일본은 당시로서는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의 사람들을 대내외적으로 자국민과 똑같이 대우한다고 공표했던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자국민”에 대해 공권력이 저지른 짓이다. 여전히 한 국가의 개인에 대한 불법행위이다. 한편 일본은 단 한 번도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절차가 없었던 것이다. 법은 권리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는 동안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김복동 할머니 사건에 대한 시간은 멈춰있는 것이다.

#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

일본 정부와 박근혜 정권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썼다. 2015년 12월 28일이 마치 의미있는 시간인 것처럼. 이런 표현은 처음 쓰인 것이 아니다. 1965년 박정희 집권 당시 맺었던 한일 청구권 협정도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박정희, 박근혜 부녀가 똑같은 시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2012년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 있다.

정치적 합의에 의해 두 나라 사이의 채권,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통치 권력을 위임받은 것이다. 개인이 가진 모든 권리까지 허락없이 국가가 대신 행사할 수는 없다. 2015년 합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복동 할머니 개인에 대해 일본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를 다투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협상을 하기 전에 할머니로부터 어떤 권한도 부여받지 않았는데 정부가 무슨 권리로 합의를 했다는 것인가.

합의를 위한 전제조건도 빠져 있었다.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문의 일본 측 표명사항에 적혀 있는 글이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이라고 돼 있다. 언뜻 그럴 듯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글은 법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다수의 여성이라고 뭉뚱그려 놓은 채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그 일에 대해 덮어 놓고 합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책임”이라고만 썼지 도의적이라는 것인지 법적이라는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게 적어 놓은 것이다. 2015년 12월 28일은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될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날이다.

# 1mm도 양보할 수 없다고?

일본은 강경한 입장이고, 이에따라 외교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럴 일이 아니다. 아베 역시 위에서 말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복동 할머니 사건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공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외교 문제가 아니다. 할머니 한 분, 한 분이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한 일본의 죄를 묻는 일이다. 저잣거리 서민들끼리의 다툼에 변호사가 나설 때도 우선 위임장부터 받아야 한다. 갑과 을을 대신해 옳고 그름을 다투는 역할을 맡았노라고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합의 과정에 우리 정부가 할머니들로부터 어떤 권한도 위임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본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라는 것을 추진했다는 자체가 또 하나의 불법적인 행위이다. “외교” 운운하는 말에는 그렇게 맞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고집을 부리는 것은 증거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한 사람의 시간이 끝나는 것 만큼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공식적으로는 32분의 할머니들만 남았다. 일본은 그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일본이 기림비, 소녀상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그런 연장선상이다. 개인의 생명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을 증거로 남을까봐 걱정인 것이다. 이대로는 할머니들에게 2018년은 새해가 될 수 없다. 아픔의 시간은 달라지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2분에게 남은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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