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은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미국 세이프가드 발동과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종합토론에서 정인교 인하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원근 한경연 부원장, 정인교 인하대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제공=한국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은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미국 세이프가드 발동과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종합토론에서 정인교 인하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원근 한경연 부원장, 정인교 인하대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제공=한국경제연구원)

 

[뉴시안=홍성완 기자] 최근 미국의 세이프가드 결정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대응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제소해 승소판정을 받아내도록 유도하는 한편,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과 협력해 국제적인 여론형성으로 미국 측을 압박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3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미국 세이프가드 발동과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날 본격적인 좌담회 진행에 앞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올해 트럼프정부는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이에 우리 기업이 받는 충격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세이프가드까지 발동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통상마찰 해소와 정부의 규제 완화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기업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이프가드는 WTO 체제하에서 수입급증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국내산업을 구제하기 위해 일시적인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된 제도를 뜻한다.

▲ 한국의 세탁기 수출물량, 4년 만에 2배로 ‘껑충’

이번 좌담회의 발제를 맡은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선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 배경에 대한 설명에 나섰다. 

최 교수는 “한국 기업 세탁기의 대미 수출물량은 2012년 160만 대에서 2016년 320만 대로 2배 증가했다”면서 “이에 한국 세탁기의 미국 시장점유율도 2012년 22.1%에서 2016년 35.2%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반면 미국 시장 내 1위 기업인 월풀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40%에서 2016년 35.2% 하락했고, 4위 기업인 켄모어도 2012년 16.5%에서 2016년 10.5%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는 삼성과 LG전자 가정용대형세탁기(Large residential washers: 8450.11.00, 8450.20.00)에 대해 연간 120만 대를 초과한 수입 물량에 대해 첫해에 50%, 2년 차에는 45%, 3년 차는 40%의 관세를 각각 물리도록 했다.

120만 대 이하 물량은 첫해 20%, 2년차 18%, 3년차 16%의 관세가 각각 부과된다.

세탁기 부품에 대해서도 5만개를 1차년도 궈터물량으로 정해 이 물량을 초과한 수입에 대해서는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2차년도에는 7만개 초과물량에 대해 45%, 3차 년도에는 9만개 초과물량에 대해 40%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 같은 내용의 세이프가드 결정은 내용 측면에서 우리 가전업계가 우려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앞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연간 120만 대를 초과해 수입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 3년간 저율할당관세(TRC)를 부과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세탁기 중 연간 120만대를 넘는 물량과 특정 부품 5만개 초과 물량에 대해 첫해 50%, 2년차 45%, 3년차 40%씩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 외에 120만대 미만의 물량에 대해서는 관세를 아예 물리지 않거나 20%의 관세를 부과하자는 2가지 의견이 제출됐으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의 관세를 택하면서 한국 가전업계의 숨통을 조였다.

현재 대부분의 동남아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수출되는 삼성전자 등의 세탁기에 대한 관세는 1% 수준이다.

ITC는 캐나다, 멕시코, 한국, 호주, 중앙아메리카(CAFTA), 콜롬비아, 요르단, 파나마, 페루, 싱가폴 등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세탁기가 각각 심각한 피해의 실질적 요인은 아니라고 판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요르단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세탁기를 모두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 한국 태양광 전지, 미국 태양광시장 15.6% 차지

세탁기와 함께 태양광 패널도 세이프가드 대상으로 포함됐다.

미국은 2016년 기준 총 83억달러 상당의 태양광 전지와 모듈을 수입했다.

한국(한화케미컬 등)은 약 13억달러를 미국에 수출해 금액 기준 미국 수입 태양광시장의 15.6%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태양광전지 수출의 68%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현재 태양광전지는 관세율이 0%다. 미국 내 한국 제품의 태양광 전지 시장 점유율은 2012년 5.7%에서 2016년 12.9%까지 두 자릿수로 상승했지만, 미국 제품의 생산 능력은 2012년 22.8%에서 2016년 16.9%로 축소됐다.

이에 미국은 세이프가드 조치에 태양광 패널을 포함하기로 결정하고, 한국 등에서 수입한 태양광 제품에 대해서는 2.5GW를 초과하는 제품에 1년 차에 30%, 2년 차 25%, 3년 차 20%, 4년 차 15%씩의 관세를 부과키로 결정했다.

최 교수는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한 삼정전자와 LG전자의 남은 카드는 미국 현지공장 조기 가동 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새로 지은 가전 공장을 본격 가동하고 생산품 출하식을 가졌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초 목표했던 3월보다는 2개월 가량 가동은 앞당긴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이 공장에 3억8000만달러(한화 약 4100억원)를 투자해 연간 생산량을 100만대까지 끌어올려 무역보복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더 좋지 않은 상황이다.

LG전자는 급한대로 미국 테네시 주 클락스빌에 2019년 1분기까지 완공할 계획이던 공장을 올 연말까지로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 세이프가드 조치 미리 예견된 수순

최 교수는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는 미리 예견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2013년 한국 및 멕시코산 세탁기에 대해 반덤핑조치를 내린 바 있다.

삼성과 LG는 각각 중국 소주와 남경을 대미수출 기지로 활용했는데,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산 세탁기에 대해 38~57%의 반덤핑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삼성과 LG는 대미 수출기지를 중국에서 다시 태국과 베트남으로 옮겼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국은 결국 캐나다와 일부 지정된 개도국들을 제외하고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어느 나라에서 수입하는 세탁기라도 제재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즉, 우리 기업들이 국내는 물론 중국과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가정용대형세탁기와 태양광 전지‧모듈에 대해 수입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내 세탁기 제조업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에 해당하는 오하이오, 켄터기, 미시건, 윈스콘신주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가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근본적인 보호조치를 선사했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앞으로 선거정국으로 빠져들수록 세탁기를 넘어 가전제품 일반, 그리고 제조업 전반으로 무역구제조치가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 조치에 WTO 제소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 국제 여론 형성으로 미국 압박

문제는 이번 WTO 소송에서 우리 정부가 승소한다고 해도 미국이 또 다시 판정을 이행하지 않고 버티게 되면 우리로서는 WTO 승인 하에 무역보복을 가하는 수 밖에 없는데, 한미 안보협력관계에 미칠 여러 가지 부작용을 고려하면 이는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최 교수의 지적이다.

현재 정부는 이번 WTO 소송과 병행해 2016년 9월 승소한 WTO 세탁기 반덤핑관련 패널판정을 미국 측이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내세워 ‘WTO 승인 하에 무역보복’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최 교수는 이 같은 대응보다는 근본적인 대응방향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미국이 사법부 우위 전통이 지배하는 전통이 강한 만큼 국제무역법원(CIT)에 제소해 승소판정을 받아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그 동안 CIT에 국제교역 이슈를 제소해 승소한 사례가 많지 않기는 하나, 최근 현대제철이 내후성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조치를 재계산하도록 판정을 이끌어내는 등 우리기업이 부분적으로 승소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국, 태국, 베트남 정부와도 협력하여 국제적인 여론형성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의 발제 이후 종합토론에 나선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최 교수의 발표 내용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으나, 향후 미국과의 통상관계 설정에 대한 부분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반론했다.

정 교수는 “CIT 제소는 일부 우리 기업들도 활용하고 있고, 현 트럼프 행정부가 WTO 분쟁절차 결과를 무시할 수 있으며, 3년(세탁기) 제재로 WTO 분쟁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CIT 제소로 미 행정부와 통상당국의 무리한 무역구제를 압박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 동맹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현 시점에서, 미국의 조치에 상응하는 대응조치를 강구하는 것과 미국 국내 정치적 여건을 고려해 대응하는 방안과의 실효성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지난해 한미 정상회의에서 합의 후속조치인 미국산 가스 수입을 중단하거나 관세를 올릴 경우 그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우리나라보다 대미 무역수지흑자 규모가 몇배나 많은 국가들과는 원만한 통상외교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데 비해, 한미 통상관계가 악화되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두 번째 종합토론으로 나선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어떤 모습의 미국을 원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입지 고려한 대응 필요할 때

김 연구위원은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 외에 트럼프 정부 출범 전후 취해진 일련의 정책 결정들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면서 “무역‧통상 관련 결정, 환율 조작국 지정 압박, 세제 개편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력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앞서는 만큼,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 같은 조치들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라며 “달성 가능성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논란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강한 달러’와 ‘국내 제조업 부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입 장벽을 높이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수출경쟁력을 위해 환율을 중시하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대규모 개방경제’ 조건을 충족하고 있어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세탁기 및 태양광 사업이 미국 경제에서 갖는 의미도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 두 사업의 국내외 생산분업 구조와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 등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고가의 대형 가전제품은 전자기술의 종합적인 집합체로, 미국 산업 전체에 대한 보호 조치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중간선거 등 경제외적 요인도 중요한 변수로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백악관과 공화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면서 “현재는 경기 호황에 힘입어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경제실적 개선 추세가 멈출 경우 언제든지 다시 발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WTO 체제 이후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시작해야 한다는 게 김 연구위원의 주장이다.

그는 “‘다자체제’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거부감이 TPP, NAFTA 등을 넘어 WTO 체제에 대한 비난과 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미국의 보호무역조치와 남발이 다른 국가들에게 수입 규제 경쟁 시작의 신호탄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WTO 한계와 별도로 미국의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가 부당하다는 점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확신시켜야 한다”면서 “해당 품목의 수입 급증과 기업 피해 간 인과관계 성립 여부, 관련 대응 수준의 적정성 등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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