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발바닥이었다. 온 국민을 테니스 열풍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마지막 히든 카드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 진출 위업을 달성한 정현 선수는 여러모로 눈길을 사로 잡았다. 

22살의 어린 나이, 교정을 해도 0.6에 불과한 고도 근시, 세계랭킹 58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혜성처럼 등장해 스스로의 영웅이었다는 노박 조코비치를 물리쳤다. 

황제라 불리는 페더러에 기권패로 무릎을 꿇었을 때의 아쉬움도 잠시. 물집 속의 물집, 깎아 내다 못해 시뻘겋게 드러난 그의 발바닥을 보는 순간 아쉬움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대회 전부터 입었던 부상과 싸워가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 맨발로 선 청년들

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정현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실력으로 뒷받침된 자신감이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벅찬 감동을. 하지만 코트 바깥 대한민국에서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정부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결과를 발표했다. 80% 가까운 기관에서 무려 5천건 가까이 적발됐다. 

비리유형도 탄성을 자아낸다. 가점 대상자에게 가점을 주지 않았고, 서류 전형과 면접 전형 비율을 절묘하게 조정하고, 채용인원을 변경하는가 하면, 아예 면접관 중에 부모가 앉아 있기도 했다. 

코트 좌우로 구석구석 찔러대던 페더러의 스트로크가 한 수 아래로 보일 정도이다. 지원서류조차 내지 않았는데 이미 합격자 명단에 오른 신공까지 나왔다. 반칙과 특권으로 얼룩진 경기. 아무런 빽도 없는 지원자들은 맨발로 코트에서 싸웠던 셈이다. 

우리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줄어든다는 아우성도 들린다. 

지난해 대비 16.4%, 그래서 올라봐야 시간당 7,530원인 최저임금이지만 그 때문에 가까스로 버티던 힘마저 잃는다고 한다.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 만큼 극단적인 사례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누군가는 어려워졌다. 

양말도 없이 맨발로 추운 겨울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그 추위는 비슷한 또래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 총선때보자?

그들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있다. 정부 여당을 곤혹하게 한 일이 있었다. 새해 벽두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기로 하면서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었다. 

핵 미사일이라는 최악의 위험에서 벗어날 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도 만들어졌다. 국민들이 환호로 반겨줄 줄 알았는데 오판이었다.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찬바람이 감돌았다. 애써 올림픽을 준비해 온 선수들의 아픔에 더욱 공감했던 것이다. 남북 문제, 핵 같은 거대 담론을 멀리 보기엔 청년들의 맨발이 너무 시려운 것이다. 

“총선때보자”는 말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암호 화폐 투자로 큰 손해를 본 청년들이 선거로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정부로서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 것도 못한 채 밤낮으로 시세변동을 들여다보고 있어 ‘좀비‘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중고등학생까지 너도 나도 뛰어들며 일할 생각이 안 든다고들 했다. 주변에서 벌었다는 “억억” 소리에 우울증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분명 대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반응은 원망이었다. 부동산으로 부를 거머 쥔 기성세대들이, 정작 청년들은 집 한 채 마련할 꿈마저 막는다고 말이다.

# 아픈 발을 감싸달라

암호 화폐 투자에 실패했다고 총선을 떠올린다는 게 앞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6월 지방선거도 아닌 2년이나 남은 국회의원 선거니까. 

이런 상황을 악용하려는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조작된 원망일지라도 분명 공감하는 청년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잠시라도 장밋빛 꿈을 꾸었던 만큼 실패는 쓰라릴 것이다. 당장 크나 큰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 화를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물론 정부가 손 놓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채용비리 전수조사를 한 것도 그런 일을 없애겠다는 시작이다. 일자리 만들기는 대통령 스스로 위원장을 맡아 챙기고 있다.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지난해 6월부터 추진했던 일이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정부가 애쓰기도 했다. 암호 화폐 광풍은 그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그걸 알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공직에 있지 않고 투자로 떼돈을 벌었을 테니까. 

다만, 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개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아픈 발에서 피가 나는데 저 산만 넘으면 오아시스가 있다는 식은 희망고문일 뿐이다. 사안 하나 하나 어떤 효과를 불러올 지 짚어 보며 정책을 펴야 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암호화폐, 블럭체인 기술은 또 한 차례 IT 혁명을 부를 수 있다. 돈 놓고 돈 먹기가 아닌 새로운 사업, 일자리의 기회라는 것을 청년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고수가 코트 구석구석으로 테니스볼을 보내듯, 필요한 곳에 직접 찔러줘야 한다. 그래야 청년들의 뜀박질이 줄어들고, 생산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다. 

보수 야권이라고 원망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지난 정권들을 거치는 동안 깊어진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큰 원인 아닌가. 그것도 모를 만큼 어리석은 청년들이 아니다. 

벗겨진 발바닥에서 붉은 속살이 아파하는데 “빨간색”이 어쩌고 색깔론 따위를 들고 나올 생각도 마라. 

청년들의 발바닥이 아프다.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양말도, 신발도 필요하다. 어른 노릇하라고, 정치인, 지도자라는 말들을 붙여 불러주지 않는가. 응답하라.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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